얼마 전,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인지 대상포진에 걸렸다. 사실 30대 초반에도 한 번 걸렸었기 때문에, 이번이 두 번째였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까, 나처럼 두 번 이상 대상포진에 걸리는 사람은 인구의 4% 밖에 안 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나왔다.
아무래도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 최근 건강을 위해 세 가지 시작한 일이 있다. 바로, 수면의 질 높이기, 좋은 음식 먹기, 달리기이다. 그중에서도 건강을 위해 가장 중요한 첫 번째가 수면의 질 높이기인 것 같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워킹 맘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아이 둘을 키우며 밤중수유로 시작된 쪽잠 습관이 단유를 하고 나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사무실에서 싸들고 온 일을 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그만 불면증 패턴이 자리 잡아버리고 말았다.
관련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며, 커피 끊기, 침실의 조명을 간접 등으로 바꾸기, 핸드폰 일찍 끄기, 수면에 도움 되는 차 마시기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해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매트리스와 침구 바꾸기였다. 침대 매장을 몇 군데 예약해서 충분히 체험해 본 뒤, 가장 편안하게 느껴진 브랜드의 인터넷 저가 상품을 구입했다. 요즘 신혼부부들이 침대 매트리스 구입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이유를 실감했다. 진작 살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최근 '내면소통'의 저자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우리 삶의 기본적인 상태가 잠들어 있는 것이라고 하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이 기본이고 피곤하면 잠시 자고 다시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반대라는 것이다. 우리의 기본 상태는 잠을 자는 상태이고, 자다가 잠시 깨서 돌아다니다 다시 잠을 자는 기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학생 때부터 5시간 자면 시험에 떨어지고, 4시간 자면 합격한다는 '4당 5 락'이란 말을 듣고 자랐을 만큼,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 잠자는 것을 너무 소홀히 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땅 하고 머리를 한 대 맞는 것 같았다.
‘아! 정말 그러네. 우리가 엄마 뱃속에서 잠을 자다 태어났고, 죽고 나서도 잠든 상태로 돌아가지 않나? 사람이 영겁의 세월 동안 잠을 자는 중에 잠시 깨어나 이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로구나.......’
며칠 전 저녁, 집 근처 강변을 남편과 함께 달리며 유난히 붉게 물든 노을을 만났다. 강물에도 하늘색이 반사되어 온 세상이 붉은빛과 주황빛이었다. 마치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잠시 깨어나 순간을 살다 다시 잠들지언정, 그전과 후는 아주 다를 것 같다고. 이런 풍경을 본 후에 다시 잠든다면, 아주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아니하리라.’ 이 말은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문구라고 한다. 건강을 잃은 후에야 건강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 것처럼, 우리 생이 얼마나 짧은 지를 기억하여야 삶의 순간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 같다.
좀 더 아름다운 풍경을 자주 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툼이나 자존심 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보살피듯이 나의 마음과 몸을 보살피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면, 대상포진은 신이 나에게 남은 생의 방향을 제대로 가라고 주신 선물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