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똑같은 것들을 말해보라고 하셨다. 예를 들면 젓가락 두 짝이 똑같다든지, 쌍둥이(초등학교 1학년이 일란성, 이란성의 개념을 잘 알 수가 없기에 쌍둥이면 다 똑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가 똑같이 생겼다는 등 우리 주변에서 모양이 비슷한 것들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앞줄부터 차례대로 발표를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이 비슷한 수준의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제법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와 친구들은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 내가 말하려던 건데?"
"중국 젓가락 하면 혼나려나? 젓가락도 다 다르잖아"
"야 너 뭐 말할 거야? 나만 알자."
"싫어, 네가 말하려고 그러지?"
내 차례가 하나 둘 다가올 때 문득 책에서 보았던 건물이 하나 생각났다. 페트로나스 타워. 내가 학교에 입학하기 얼마 전에 완성된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나는 기막힌 생각을 했다는 것에 뿌듯해하며 나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차례가 왔다.
"말레이시아 쌍둥이 타워요!"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나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2~3초가 지나고 아이들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가 멍해졌고 아이들이 왜 웃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나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셨다.
"쌍둥이 타워라는 건 없어요. 다른 걸 생각해보렴."
순간 무엇인가 머리를 '쿵'하고 때린 기분이었다.
'어? 내가 잘못 봤나...? 아닌데..? 분명히 책에서 봤는데?'
아버지가 건축과 설계 관련 일을 하셨기에 집에는 건축에 대한 책이 많았고, 나는 그것들을 흥미 있게 읽었다. 워낙 특이한 건물이기에(그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건물의 사진이 기억날 정도이니.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앞에서 나는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야 쌍둥이 타워라는 게 어디 있냐?"
"그냥 잘 모른다고 하지 왜 지어냈어!"
초등학교 1학년, 8살짜리가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지만 더 큰 놀림을 받을까 겁나 끙끙거리며 참았던 기억이 난다. 웃음거리가 되려고 했던 말이 아니었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예상했겠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읽은 책부터 찾았다.
페트로나스 타워
1997년 제작. 세자르펠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한국과 일본 건설사가 함께 건설함.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틀리지 않았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몰랐지만 결국 비웃음을 당한 건 나였다. 8살짜리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진실이었다. 그 책을 펼쳐놓고 몇 시간 고민을 했다. 이 책을 들고 가서 선생님께 보여드려야 하나? 아이들에게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야 하나? 비웃음에 대한 사과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자기 전까지 고민을 했다. 잠들기 전 가방에 넣었던 그 책을 조심스럽게 뺐다. 그리고 다음날 그냥 학교에 갔다. 그리고 다음부터 남들과 비슷한 대답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별로 관심이 없다. 그것이 나한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을 때는 더욱.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이 나한테 무슨 영향을 줄지 모를 때는 더욱'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체르노빌'이라는 드라마의 인트로에는 '거짓의 대가'라는 것에 대해 레가소프가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What is the cost of lies?
드라마 전체 내용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문장이 아닐까. 과학자 레가소프는 주장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보다는 그것을 묻어두고 싶어 한다는 사람이 많다는 점. 이것은 국가나 체제, 신념을 떠나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달콤한 거짓을 판단 없이 믿어버리는 혼탁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잘못 학습화된 태도로 인하여 우리가 모르는 지식과 다른 의견을 틀렸다고 판단하는 고민하지 않는 사회이다.
물론 초등학교 교실에서 발생했던 일련의 일들이 체르노빌 같은 사태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지식을 습득하는데 비하여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가르치는 교육은 소홀한 것 같다. 지식은 배우면 그만이다. 21C의 지식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정보는 역사상 가장 인간의 가까운 곳에 산재해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넘치는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판단하지 못한다. 판단하는 힘과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실을 틀린 사실로 치부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진실에서 멀어지고 우리사회는 진실을 말하기보다는 듣기좋은 비슷한 답을 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우리 사회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삶의 수준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사실을 틀렸다고 말하는 세상.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인터넷 뉴스 댓글, 유튜브 댓글 등을 잠잠히 살펴보면 1학년 때의 초등학교 교실이 생각난다. 내가 모르기에 함께 남을 비웃는 세상. 우리는 무지를 비판할 순 없다. 그러나 무지한 태도는 비판해야 한다.
What is the cost of not admitting another answer?
다른 대답을 인정하지 않는 대가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대답이 아닐 때 우리는 표정을 찌푸리는 것이 아닌, 고개를 갸우뚱하는 정도에서 멈춰야 하지 않을까. 표정을 찌푸리는 사회란 타오르는 지성에 마른 모래를 뿌리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르게 만들어진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바뀐다. 세상은 그렇게 살아 숨 쉰다.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기준을 공유할 때, 인류는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을 겪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데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아리스타르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다윈은 얼마나 대단한 배포를 가진 사람이었는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