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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영어로 소통이 안될 줄 몰랐지 뭐야!"

by RNJ
<아래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이번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해"
"어디 갔다 왔는데?"
"프랑스랑 독일"

"아니 영어가 안 통하는 곳이 있더라니깐"
"그래? 어디를 갔길래?"
"일본, 그 사람이 영어를 해도 발음을 못 알아듣겠어."

"영어 메뉴판 하나 없더라고. 음식 시키는데 엄청 힘들었지 뭐냐"
"그래? 어디에서 뭐 먹었는데?"
"스위스에서 피자 먹었지"

"와 그 나라는 영어로 소통이 안되더라"
"어디 갔다 왔냐?"
"한국, 물론 남쪽이다?"


Q. 위 지문에 등장하는 국가 중 영어가 모국어인 국가는 몇 곳인가?

1. 0개 2. 1개 3. 2개 4. 모두


A. 1번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말하는 단골 멘트가 있다.


"아니 영어가 안 통해서 너무 답답하지 뭐야?"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의 영어권 국가를 갔다 온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을 리 없다. 그들은 영어가 모국어, 공용어가 아닌 국가에 다녀온 후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고 배웠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관광지 사람들은 으레 2개 국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에 외국인이 해산물을 먹기 위해 노량진 수산 시장을 방문했다고 생각해보자. 영어를 써야 할까 서툴더라도 한국말을 쓰는 것이 효과적일까? 언어는 대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내가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적절한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이게 녹록지 않다면 바디랭귀지, 번역기 어플을 사용하는 등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파리를 여행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간판. 광고 아니에요. - 파리에서 촬영


호텔이나 유명 관광지에는
영어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Q. 만약 당신이 호텔 인사담당자라면 누구를 뽑겠는가?


1. 중국어 회화 가능자 2. 영어회화 가능자 3. 스페인어 회화 가능자 4. 아랍어 회화 가능자


A. 호텔에 가장 많이 방문하는 국가의 언어 회화 가능자를 뽑지 않을까?


모국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전 세계 언어 사용 순위는 중국어가 1위, 스페인어가 2위, 영어가 3위이다. 사용국가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물론 영어가 압도적인 1위이다. 약 150여 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실제로 영어는 가장 많은 국가에서 배우고 사용되는 언어 중 하나이다. 우리가 어디를 가던 영어가 통하겠다고 생각하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사람 중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몇 % 정도 될까? 그리고 그들이 관광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영어를 할 줄 알며 도움이 필요한 특정 여행객과 우연히 관광지에서 마주칠 확률은?


영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내가 할 줄 아는 언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것을 어찌 탓하겠는가? 표정, 손짓, 지도와 어플을 사용해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 내가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영어가 안 통한다고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자.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영어 메뉴판은 왜 없는 거야?"


"아니 영어 메뉴판이 없어요?"
"영어를 할 수 있는 바텐더가 없나요? 어떻게 주문하지...?"


만약 당신이 가게 주인이라고 생각해보자. 새벽에 일어나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 오고 오전에는 재료를 손질하고 오후에 문을 열고 밤늦게 식당을 닫고 뒷정리를 하고 다음날 장사를 위해 잠자기 바쁜 자영업자에게 영어를 공부하고 영어메뉴판을 따로 만들 여유가 있을까? 당신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거나 회사를 위해 새로운 보고체계를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앞에 놓인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히 살아간다. 여행지에서 여유로운 것은 우리 여행객들 뿐이다. 반면에 그들은 지금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관광객들을 배려하는 곳을 칭찬할 순 있어도 이러한 것들이 없다고 해서 불평할 것은 없지 않을까?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자. 맛있는 음식을 경험할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시켰노라! 나왔노라! 맛있었노라!


영어? 몰라도 재밌게 여행할 수 있어요.

프랑스에선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에서는 서로가 영어로 말하지만 서로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진다. 일본에선 영어보다 한국어를 쓰는 것이 효과적이다(특히 오사카). 독일인들은 영어에 독일어로 당당히 대답한다(응? 팔든?). 스위스인들은 독일인도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어를 사용한다고 한다(물론 나는 독일과 스위스 두 곳 모두에서 독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태국은 미국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덕분에 영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 말이 내가 태국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했다는 말은 아니다. 번역기 어플은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신이 내린 선물이다. 감사합니다 개발자 여러분들. god bless you!


조금 귀찮더라도 현지 말을 몇 가지라도 알아가면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된다. 간단한 인사말, 감사 표현, 가격을 물어보는 표현 등 짧은 몇 가지 표현들이 여행을 보다 재밌게 만들어준다. 가격을 흥정해야 할 때, 길을 물어봐야 할 때 그들의 모국어로 말을 건네보자. 우리나라에 방문한 외국인이 어설프더라도 한국어로 물어보는 것이 정겹고 보기 좋지 않던가. 비행기에서 가이드북을 보며 우리나라 말을 열심히 공부한 그들의 노력이 서툰 한국어 한마디에서 보이기에 우리는 경계심을 풀고 질문에 웃으며 답을 해줄 수 있다. 그런 여행객은 충분히 배려받을 자격이 있다.


일본 스타벅스에서 받은 '안녕하세요'

불어로 끝까지 길을 안내해주셨던 프랑스 할머니 두 분, 베를린에서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해준 금발의 바텐더 아저씨, 유람선에서 한국어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눴던 나이 지긋했던 일본인 아저씨까지. 그들과 웃으며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짧은 문장이더라도 그들의 모국어로 인사와 질문을 건넸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영어를 좀 못하면 어떠한가.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눈빛과 미소, 그리고 어설픈 언어들을 끌어모아 도움을 받고, 때로는 도움을 줄 수 도 있다. 이 정도면 여행하기 충분하지 않을까?




여행 = 불편함? 아니다!


집에 누워 과자를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거나 집 근처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다. 말도 잘 통하고 음식도 입에 맞고 10시간씩 비행기를 탈 필요도 없다. 반면에 여행은 불편함을 무릅쓰는 과정이다. 낯선 언어와 음식, 문화에 당황스럽고 불편할 수 있겠지만 사실 여행이 그런 것이다. 복잡한 공항에서 정신없이 수속을 하고 전신을 스캔당하며 긴 시간 비행기에서 불편한 쪽잠을 자다 입국하기 위한 심사까지 거쳐야 비로소 도착한 나라에서의 여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돌아올 때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 헤르만 헤세


잠시의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우리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여행해 볼 수 있다. 역사적인 건축물 아래에서 인간의 건축기술과 예술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고, 경이로운 자연풍경을 앞에 두고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 수 도 있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공유하고 그들의 언어로 말하며, 그들의 음식을 먹음으로써 우리는 우리 머릿속의 한계를 허물고 세상을 바라보는 보다 넓은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나는 여행이 연애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연애를 통해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 배우게 된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 무엇을 할 때 불행한 사람인지. 여행도 이와 비슷하다. 새로운 도시와 국가들을 여행할수록 진정한 자신의 모습에 조금씩 더 가까워진다.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무엇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지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여행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에 불평하기보단 그 순간을 통해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한 번 돌아보자. 나의 인생의 방향을 바꿀 소중한 가르침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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