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파리는 정말로 무더웠다. 40도를 육박하는 날씨에 온 도시가 한증막 같았다.'아니 파리 사람들은 더위를 안 느끼나?' 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가 나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 그냥 더우면 더운 대로 사는구나. 사람들은 뜨거운 햇살을 피해서 그늘을 찾아다니기 바빴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여름에도 엄청 시원하다. 화장실은 깔끔하고 환승안내도 잘되어있고 심심할 때 읽기 좋은 시도 벽에 붙어있다. 한국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쾌적한 교통수단일지도 모른다.
반면 프랑스의 지하철은?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군데군데 불이 나가 있으며 페인트는 원래의 색을 잃었고 천장이 뚫린 채로 전기불이섬광을 내뿜으며 '파지직' 소리를 내는 곳도 있었다. 이 역이 특별한(?) 곳이었냐고? 물론 깔끔하게 정비된 곳도 '간혹'있었지만 대부분의 지하철 역이 엉망이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지하철이니 시설이 낙후된 것은 세월을 탓할 수밖에.
파리는 지하철까지 무더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도시에 적응하기로 했다. 어차피 며칠 여행하고 떠날 예정이었으니. 그런데 지하철이 출발하고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게 아닌가? 출발을 해야 에어컨이 나오는 시스템(제가 생각해도 저는 가끔 수준 이하의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인가 하고 바람의 근원을 찾아보니, 세상에 지하철은 창문이 열린 채로지하터널을 질주하고 있었다.
"이게 뭔...?"
이런 걸 두고 컬처쇼크라고 하던가? 바람이 시원하긴 했지만 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나중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바람이 가장 시원하게 불어 들어오는 곳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었다.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지 뭐. 그래도 창문을 열고 다니니 환기는 잘되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도 해봤다.
파리 기후협약 이후로 지하철 에어컨을 다 떼 버렸나?
순간 '역시 혁명의 나라구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저의 상상력은 이 정도 수준입니다.) 내가 프랑스를 방문했던 시기는 기후협약이 체결되기 전이었다. 내가 이용한 일부 오래된 노선에만 에어컨이 없었을 수도 있다. 파리에 지하철 노선이 16개나 있으니 아마 새로 개통한 노선은 시설이 제법 좋지 않았을까?
지하철 창문 근처에 기대서서 바람을 즐기던 사람들. 한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가끔 그때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 '승객 여러분, 오늘 날씨가 많이 더우니 객실 창문을 열어주세요'하는 방송이 나온다면 사람들이 기겁을 하지 않을까. 가끔 그때 추억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