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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지하철에서의 추억 2 - 지하철이 멈췄다

알아들을 수 없었던 불어 안내방송

by RNJ

파리에서 열차를 타고 다니면 어딜 가나 알록달록한 캘리그래피(?)를 볼 수 있다. 보통 그라피티 아트라고 부른다.


샤를 드골 공항을 나와 도시로 들어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공항은 파리 북쪽 외각에 있기 때문에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버스나 열차를 이용해야 한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관광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간쯤 갔을까? 열차가 문을 연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승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불어 안내문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역무원의 특이했던 영어 발음들을 조합해보면, 어떤 신고가 접수되어 해결될 때까지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투덜대며 기찻길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떠나기 시작했다. 마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처럼. 그들은 철도를 넘어 담벼락(?)을 넘어 어디론가 흩어지고 있었다(아니 저기는 사유지 아닌가요?). 그들은 마치 열차탈출 매뉴얼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한순간에 담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여행객들과 시간이 많아 보이는(?) 승객들만 열차에 남아있었고 역무원은 생수를 한 아름 들고 와 승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들에게는 이런 일들은 특별한 일이 아닌 듯싶었다. 그리고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파리에 테러 경계단계가 격상되었다고, 외교부에서 보낸 문자였다. 열차에서 나와 플랫폼에서 생수를 마시는데 중무장한 경찰병력들을 보았다. 그들은 돌격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여기는 프랑스 파리, 유럽의 한 복판이었다. 참호나 전선이 아니라.


나의 첫 유럽여행은 지하철이 멈추면서 함께 멈췄다.




내가 해외에 왔다는 것을 처음 실감한 순간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찰들



내가 프랑스에서 처음 느낀 감정은 뭐랄까... 좋게 말하면 놀라움이었고 솔직하게 말하면 두려움이었다. 공항과 기차역에서 만난 경찰들이 파마스 돌격소총을 한 정 씩 차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개선문에서 만난 경찰들 또한 장총을 가지고 시민들을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선 경찰들이 방탄조끼를 입고 까만 선글라스를 낀 채 총에 손을 올리고 걸어 다녔다. 한국에서 총은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내가 처음 총을 본 것은 꼬맹이 일 때 보았던 국군의 날 행사였다. 군에 있을 때야 총을 수없이 봤지만 사회에서 연사가 가능한 총을 볼 일이 잘 없다. 프랑스에선 총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것도 권총이 아닌 기관총.


기관총은 다수의 적을 일순간에 무력화시키는 무기이다. 파마스 돌격소총이 장전된 수십 발의 총알을 쏟아내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초면 충분하다. 그런 무기를 경찰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가 방문한 파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파리의 치안을 위협하는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선 이 정도 무기가 필요했다고 그들은 판단한 것 같았다.



프랑스에서 만난 파마스 돌격소총 출처 : 총기백과사전



프랑스를 가기 전까지
몰랐던 것들.

밤늦게까지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것, 초등학생 아이가 혼자 학교에 걸어간다는 것이 감사한 일인 줄 몰랐다. 는 한국에서 자랐고 모든 나라가 우리나라 같을 줄 알았다. 8살부터 학교를 혼자 걸어 다녔고 고등학교 때 야자가 마치면 밤 10시쯤 집에 도착하곤 했으니. 심지어 그 시간에 학원을 가고 하루가 지나고 나서 집에 도착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파리는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 너무 달랐다. 길에선 집시들이 몰려다니며 여행객을 노리고 있었고, 내 눈앞에서 서명 종이를 들이밀며 자신의 파트너에게 눈짓을 보내는 2인조 소매치기도 있었다. 눈앞에서 이런 일들이 허다하게 벌어졌고 처음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되도록이면 밤에는 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였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도시 중 한 곳이다. 한때 1억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쉽게 생각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모두 인천공항에 모은 후 (2021년 기준 국내 인구는 약 5200만 명이다.) 전 세계 비행기를 모두 대절해서 2번을 왕복해야 채울 정도의 관광객들이 매년 프랑스 파리로 밀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관광청은 2018년 기준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 외국인 입장객이 1,000만 명을 넘었고, 프랑스의 외국인 관광객은 약 9,000만 명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다 보니 이들을 노리는 범죄자들이 많고, 파리가 세상의 이목을 끌기 위한 테러단체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눈앞에서 다른 관광객이 소매치기를 당하는 모습,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관광객의 뒤를 쫓는 집시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선 강도를 당하거나 다쳐도 특별한 일이 아니겠구나.' 프랑스 현지인들로 보이는 이들은 그들의 행동을 멀찍이서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도시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만약 아이라도 키우고 있다면?


내가 집시들에게 호되게 당한 후 나와 눈이 마주친 프랑스인이 있었다. 우리는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은 웃고 있지도, 울고 있지도, 화가 나있지도 않았다. 그는 지쳐 보였다. 피곤한 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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