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의 과거 현재 미래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00 인근 최대 크기! 00역 도보 3분.
개인 냉난방/화장실/샤워실 완비, 풀 옵션!
밥, 김치, 라면 제공
<00 고시텔, 원룸텔, 하이텔, 레지던스....>
문의 : 010-XXXX-XXXX
번화가를 걸으면서 이런 광고를 한 번쯤 봤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최대’ 크기임을 자랑하고, 다양한 ‘개인’ 시설을 확보하고 있다고 홍보한다. 이름도 고시원보다는 무언가 세련된 것 같다. 원룸텔, 싱글 하우스, 하이텔. 영어를 사용하면 가치가 폭등하는 현상은 아파트에만 해당하는 현상이 아니었나 보다(세련된 영어 단어가 여럿 포함된 아파트 이름이 20자가 훌쩍 넘어가는 일은 이제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이런 변화는 고시원의 고급화 전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광고와 매스컴, SNS를 통해 고시원이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모습에서 많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고시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출생증명서가 따로 없는 관계로 고시원이 언제부터 ‘고시원’으로 불렸고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정확하게 알 순 없다. 기록을 살펴보면 1970년대 서울대학교의 신림동 이전 이후 공부와 생활을 한 공간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학생들의 요구에 맞춰 고시원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남한은 북한보다 국민 소득이 낮았다). '사설 독서실'로 불렸던 고시원은 봉천, 사당, 대학가 지역으로 입소문을 타고 확대되기 시작한다. 이 시절 서울에서는 대규모 판잣집 철거가 이루어졌고 기존의 생활권을 떠날 수 없던 사람들은 고시원, 여인숙, 쪽방, 살아남은 판잣집으로 몰려든다. 지하실을 갖춘 불란서 주택이 공급되고 대북 갈등으로 인해 지하 공간을 확보한 건물들이 건축되기 시작한다. 어딘가 중고 같은 신축 주택에 사람들이 모여들며 열악한 주거 환경이 사회 문제로 천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1970~1980년대 대규모 재개발 붐이 일어나고, 기존 세입자에 대한 대안 없이 이루어진 철거 정책은 집이 없는 도시 빈곤층을 양산함과 동시에 주거비와 임대료 폭등을 야기하고 말았다. 1970년대 서울시 전체 가구의 약 40%가 무허가 건물에 거주하였으며, 80년대에는 88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명목 하에 도시 멸균 작업이 실시되었다. 외신과 외국 선수들이 입국하는 동선을 따라 대규모 재개발이 실시되고 14명의 철거민이 자살과 분신을 선택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250만 가구가 방 한 칸에 모여 살고 있었으며, 자가 비율은 50%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한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대한민국의 역사는 30년 뒤 지구 반대편 브라질로 수출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개최 과정에서 25만 명의 시민이 강제 이주당했다. 선수들의 화려한 퍼포먼스 아래에서 누군가는 신-디아스포라를 체험해야만 했다. 노후화된 건물이 철거된 지역은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부촌으로 변모했고, 국가의 부가 선별적으로 불하되는 사태를 만들어버렸다. 시제를 과거형으로 써야 할지 현재 진행형으로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1990년 후반 동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로 실업자와 노숙자가 급증하고 고시원 거주자의 연령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1980년대 3.7%에 불과했던 1인 가구는 2000년에 이르러 15.6%까지 치솟았고,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많은 사람이 수도권 이주를 선택했지만 이를 수용할 주택은 현저히 부족한 상태였다. 서울 소재 대학 기숙사 수용률은 평균 10%대에 머무르고 있었으며 거처를 구하지 못한 대학생, 수도권에서 홀로 생활하는 가장, 실직 이후 머무를 곳이 없는 사람들이 고시원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2만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고시를 준비했던 공간은 저렴한 주거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옵션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때부터 고시원의 화재 위험성과 인간 소외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가 신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5년. 고시원은 2,800곳으로 늘어났다. 간단한 신고 절차, 현금 수급이라는 장점을 갖춘 ‘상품’ 고시원에서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수평적 방 쪼개기가 암암리에 이루어지곤 했다. 크고 작은 화재와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송파구 고시원에서 8명이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소방재난본부 주관으로 4,211개의 고시원 특별 점검이 실시되었다. 같은 해 용인시 처인구 고시원에서 화재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9년 고시원은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대한 특별법>의 적용을 받으며 처음으로 합법적인 시설로 인정받게 된다. 2010년에는 ‘준주택’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인구와 시대 변화에 맞추어 소형 주택을 민간 주도로 공급하는 시도가 벌어진다. 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준주택을 양산하여 경색이 발생한 주택 공급에 활로를 뚫으려는 시도였다. 이는 질적 공급을 포기한 양적/수량적 주택 공급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최소 주거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집으로 합법적 임대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1인 가구 비중이 20%를 넘어섰고, 고시원은 숙박형 거주민의 수가 학습형 거주민 숫자를 넘어서며 임시 거처가 아닌 사람이 상시 거주하는 ‘집’으로 변화하였다.
고시원업의 합법화 이후 2010~2011년에 2000개에 가까운 고시원이 새롭게 탄생했다. 2018년에 이르러 고시원 거주자는 15만 명을 넘어섰고, 주택 이외의 시설에 거주하는 36만 명의 국민 중 40%가 거주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즈음에 많은 분이 기억하고 있는 종로 국일 고시원 화재가 발생한다.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한 인재(人災).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는 3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 미신고 사업으로 안전진단 제외, 건물주의 스프링클러 설치 반대, 꺼져있던 화재 비상벨. 고시원 사업자는 유죄 판결을 받고 생존자들은 생활 터전에서 멀리 떨어진 임대 주택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하게 된다. 60%에 가까운 고시원이 건축된 지 20년이 훌쩍 넘은 건물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6000여 개 이르는 고시원은 내부 시설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2019년에 이르러 고시원의 숫자는 12,000여 개에 이르게 된다. 고시원은 현금 수급이 괜찮은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되었으며, 번화가와 역세권 상가를 중심으로 성황리에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상업지구에 밀집한 고시원에서는 절도, 화재, 안전사고와 같은 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고시원은 자신의 이름과는 달리 더 이상 고시생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대부분의 고시원에는 기본적으로 책상과 TV가 기본 옵션으로 제공된다. 공부하는 학생을 위한 책상과 도시 근로자의 적적함을 달래주는 TV. 방음이 되지 않는 벽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이 묘한 동거가 혼란스러운 고시원의 정체성을 잘 대변한다. 그러나 여전히 ‘고시원’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평수 대비 가장 비싼 임대료(품질은 떨어지는)를 받는 주거가 양산되고 있다. 이 불명확한 공간의 이름부터 제대로 바꿔야 할 시대가 온 것 같다. TV가 유입된, 방음이 되지 않는 고시원에서는 더 이상 고시생들이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고시원을 찾아온 학생들이 독서실을 따로 등록해야 하는 이중 지불 현상이 벌어지고, 온라인 강의 활성화, 고시가 하나씩 폐지되며 고시원 속 고시생은 서서히 소멸하기 시작한다. 신림동과 노량진에 집중되어 있던 고시촌이 위축되고 새로운 고객인 직장인과 대학생을 확보하기 위해 상업지구 주변으로 고시촌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고시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자 고시원 사이에서 경쟁이 붙기 시작한다. 고급화 전략을 바탕으로 새로운 명판을 내걸고, 자신들이 더 이상 ‘고시원’ 수준에 해당하는 주거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한다. 인스타 감성의 벽지를 새로 바르고, 두 칸짜리 냉장고를 방마다 들이고, 개별난방과 에어컨을 설치하고, 24시간 방범 카메라를 설치한다. 경쟁을 통해 임대료가 조금 상승하긴 했으나 이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훨씬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1인 주거 공간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외부창이 없는 방이 여전히 40%에 이르고 전체 고시원의 절반에 가까운 곳이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시원이라는 동일한 주거 시설 내에서도 생활수준이 극과 극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시원에서 함께 숙식을 해결하는 영세업자가 있는가 하면, 건축주나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는 기업형 고시원도 생겼다. 이제 고시원은 한두 가지 단편적인 개념으로 정의되지 않는 새로운 주거, 산업 형태가 되었다.
정치권에서 고시원에 채광과 환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창이 없는 방이 다수 존재하며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복도를 두고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층에 몰려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시원은 다중이용시설, 준주택, 고시원업, 숙박업, 주택임대업, 주택 임대관리업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채 법 사이에 존재하며, 임시방편 땜질로 점철된 채 스스로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고시원 거주민들은 여전히 불충분한 소방/안전시설로 인해 거주 안전을 위협받고 있으며, 양극화된 주거 환경으로 인한 심리, 사회적 박탈감으로 인한 무기력과 우울을 체험하고 있다.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끝도 없이 오르는 대출 금리. 위험천만한 레버지리를 당기지 않으면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할 수 없으나 이에 다가서는 과정이 지나치게 불안전해 보인다. 매년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깡통 전세 사기, 빌라왕 사건, 부실시공과 철근 누락 같은 사건은 국민들이 애써 모은 자산과 소중한 생명을 송두리째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불신과 사기는 젊은 층이 고시원을 선택하게 되는 하나의 이유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1억 원이 넘었으며, 중위 가격 또한 9억 원이 넘었다. 전세 가격은 6억을 돌파했으나 20대 남자의 평균 소득은 남성 229만 원 여성 212만에 머물고 있다. 모든 연령대를 포함해도 남자의 평균 소득은 360만 원, 여자는 236만 원이다. 서울에 위치한 10억 원의 집을 사기 위해서는 305달, 25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하다. 전세를 위해서는 12~13년 간 소비 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이 전혀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서울에서 멀어지면 매일 2~3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사용하여 돈을 살 수 있다. 광역버스는 지금도 충분히 비좁다.
LH와 SH는 행복 주택, 청년 공공주택, 전세임대주택, 희망 하우징과 같은 1인 가구 주택을 공급하고 있으나, 전 연령층에 고루 분포한 1인 가구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주택 정책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청년층은 물론이고 만연한 개인주의와 이혼율의 증가로 전 세대에서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주택 청약제도에서 1인 가구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개발과 사업체 집중, 고등 교육기관이 밀집된 서울은 모든 국민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장소가 되었다. 이력서의 첫 줄부터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해, 이름 있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훌륭한 문화 인프라를 누리기 위해. 지역 균형 발전은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수도권에 살고 싶어서(Want?) 수도권으로 가는 것일까, 살기 위해서 수도권으로 가야만(Must?) 하는 걸까? 현실을 적시에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와 주택 공급정책으로 대한민국의 주거 안정성과 지속성은 망망대해 위에서 표류하고 있다.
고시원은 유럽 열강들이 노예들을 실어 나르던 노예선이나 영국인들이 죄수를 실어 나르던 감옥선과 아주 유사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에 빽빽하게 밀어 넣어진 사람들. 고시원의 평면도를 보고 있자면 꼭 현대판 노예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중에서 대다수는 식민 모국에 도착하기 전에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고, 소수는 살아남아 사회의 밑바닥에서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한다.
총선만 다가오면 옥탑방과 쪽방, 고시원에 얼굴을 비추는 정치인들을 뉴스를 통해서 볼 수 있지만 투표가 끝나면 아무도 열악한 주거 환경 개선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인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을 4년에 한 번 방문하는 체험학습 정도라 생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국회의원의 해외 출장 횟수는 매년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고시원은 여전히, 아니 고시원조차 자신을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세상에 진입했다. 고시원을 바라보는 우리의 복잡하고 난해한 시선을 하나로 통합할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이 장소를 제대로 명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시원은 더 이상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세워진 임시 칸막이 공간이 아니다. 많은 시민이 생활과 거주를 목적으로 입실하는 고시원은 법의 보호와 기본권의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주거 형태로 발전하고 일부 개선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 상황을 외면한 채 이상적 주거 환경을 외치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최소 기준을 정하게 된다면 새로운 무허가 거주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권이 배제된 주거 정책에 대한 포괄적 논의와 개선이 필요한 시대이다.
얼마 전, 고시원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행정 명령이 내려졌다. 내가 거주하는 고시원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코로나가 발생한 고시원이 속한 행정구역의 모든 고시원 거주민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 바로 이 행정 명령이 고시원의 위치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아파트나 빌라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고 그 지역에 위치한 모든 아파트, 빌라 거주자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진 않는다. 한정된 인적, 물적자원을 적재적소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기에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고시원은 노래방과 같은 다중 이용시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이용하는 코로나 전파 위험이 아주 높은 시설이다. 공용 주방과 공용화장실로 가기 위해 마스크 없이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이곳은 결코 집이 되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조심스럽게 그려보는 고시원의 미래>
조만간 밀려오는 파도에 무너질 모래성에 법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그 모래성에 15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이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조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주거 형태인 고시원에 1970~1980년대 벌어졌던 급진적이고 과격한 방법을 시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도 열상을 만들고 만다. 차가운 면도날을 자신의 피를 볼 일이 없기에, 바닥에 떨어지는 피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자신이 될 것이다. 부족한 환경은 조금씩 개선을 하되 점진적으로 비주택 거주민을 줄이는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되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고시원 거주민들은 불규칙한 근무, 전입신고 누락 같은 이유로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의견 제시와 정치 참여가 어렵다. 고시원에 거주하는 중장년층은 온라인 청원과 같은 변화된 사회 참여 시스템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고시원에 거주하는 20~30대 거주자들이 이런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면 아마 이곳의 쪽방과 골방은 10년, 20년 뒤에도 계속 어둡고 볕이 들지 않는 공간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우리 중의 일부,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리지 못한 다음 세대의 자녀들이 다시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다. 다음 세대의 청년들이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 우리 세대를 어떻게 바라볼까? 우리 세대의 한 손에 지워진 짐이 있다면, 다른 한 손에는 우리 세대가 누리는 혜택과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기회가 들려 있다. 장차 궁지에 빠질 미래의 청년들을 줄이는 것이 우리 젊은 세대의 책임이자 역할이 아닐까 싶다.
고시원이라는 이름부터 '도시형 1인 주택' '1인 가구 단기 생활 주택‘같은 이름으로 제대로 명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인 가구 최소 면적을 논의하고 거주민과 사업주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융통성 있는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자체나 국가 주도로 임대료를 보조하거나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1인 가구를 위한 적정 평수의 주택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다. 노후화된 건물을 민, 관이 함께 매입하여 새로운 형태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고시원을 만들고 내창방을 공유 시설로 변경하는 임대 사업자를 대상으로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고시원업을 희망하는 건축주를 대상으로 건폐율과 용적률 혜택을 제공하여 사업자와 임차인이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영세 고시원 사업자는 고시원에 직접 거주하며 생활하는 경우가 많으며, 임대인이라는 이유로 갑이 될 수 없는 일부 고시원의 특성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고시원과 같은 비/준주택을 통제하고 담당할 수 있는 중앙 부처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민·관이 협력하여 시민 조사단을 구성해 상황과 환경을 고려한 개선안을 정기적으로 행정기관에 제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책의 지속성이 떨어지는 사회 기금 기반의 지원이 아닌, 정부 예산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지속 가능한 지원 시스템을 확보하고, 내부 구조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고시원을 대상으로 안전 점검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투명하고 안전한 관리 시스템을 확보하여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보호 아래에서 스스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 아니했어야 하는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는 국민들 간의 불신을 조장한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오는 민주주의의 기단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은 국민의 주거 안정을 보장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높은 에너지를 가진 감마선을 활용해 종양 세포를 제거하는 감마 나이프라는 수술이 있다. 다양한 방향에서 약한 감마선을 방출하여 한곳에 집중시켜 불필요한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법인데 서로의 이익을 해치지 않고 새로운 갈등을 만들지 않는 선에서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그러나 이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행동이 시작되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고시원에서 살아보지 못했더라면 알지 못했을, 그리고 탈출했기에 바라볼 수 있는 현실. 눈길이 머물지 않았던 세상에 직접 살아보며 결코 외면하지 말아야 할, 등불 아래 산재된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삶의 질은 가장 기초적인 요인들의 균형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의식주’라는 삶의 기본 요소를 고시원이라는 환경에 맞추어 수정한다면,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의(衣)를 제외하고 가장 위협당하기 쉬운 위태로운 존재인 아(我)를 추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양한 영향 요인을 종합하여 고시원 거주민의 삶의 질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아식주 삼각형을 그려보았다.
공기가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있는 비주택 거주민들의 삶. 부풀림과 동시에 쪼그라뜨릴 수도 있는 외부의 강력한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민주국가와 시민들의 목소리이다. 도시의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쪼그라들어 살아가는 준주택 시민들의 삶. 고시원 주민들의 삶의 질 삼각형은 평탄화 작업을 마친 탄탄한 대지가 아니라, 쉽게 구겨지고 구부려지는 도화지 위의 큰 삼각형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양극에 작용하는 작은 에너지에도 쉽게 구부러지는 공간, 이를 다시 부풀리기 위해 남은 공기라도 지켜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당장은 해결이 힘들어 보이는 난제조차 함께 참여하고 논의하고 양지로 끌어내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식주 삼각형을 통해 주거 빈곤층을 위한 대안을 마련할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얼마나 다양한지 확인해 볼 수 있다(고려해야 할 요소가 훨씬 더 많겠지만). 정책적인 접근과 시민 사회의 참여와 감시, 사업자가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하되 세입자의 권리를 장기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는 소극적이지만 지속 가능한 개입이 필요해 보인다. 빈곤 주택 문제는 일자리 문제에서 이어지며, 대안책이 부재한 주택 시장의 경색에서 발생하며, 민주 시민들의 방관 속에서 만들어진다. 사회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적극 참여하는 과정 속에서 건강해지며, 이웃의 권리를 지켜주고자 하는 노력에서 우리는 강력한 사회 안전망과 연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사족을 더하자면 나는 고시원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필요하다. 고시원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디로 갔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여관방? 게스트 하우스? 수녀원? 나는 이곳에서 꿈을 키웠고 그 꿈의 일부를 이루었고 새로운 길도 발견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한 뼘 차이로 벽을 넘어서지 못해 좌절감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고시원은 이런 거주자를 보호하기는커녕 공격하는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 그들에게 집의 의미를 되찾아줄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