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 오게 된 이유
"삑-삑-삑"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지는 병원. 짧은 시간 몸을 담았던 뇌 신경계 중환자실은 손상과 출혈을 최소화하여 환자를 회복시키는 공간이었다. 환자를 간호하기 위해서는 ‘히스토리’를 먼저 파악해야 하는데, 이 기록을 통해 환자가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뇌 신경계 중환자실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입원한 환자가 참 많았다. ‘금일 아침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었으나....’ ‘떨어지는 벽돌에 머리를....’ ‘교통사고로 본원 ER(응급실) 내원하여....’ 특정 시점 이전까지 육체와 정신이 아주 건강했던 사람들. 그런 환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찾아오는 공간이었다.
하루아침에 의식을 잃거나,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눈만 겨우 뜬 채 천장만 바라보는 환자들. 담당 의사의 설명을 듣고 바닥에 주저앉거나 담담한 표정으로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보호자들. 신규 간호사인 나를 붙잡고 이런저런 사연을 풀어놓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참 많았다. 성실. 부지런. 다정한. 고생. 환자들의 수십 년 인생을 대변하는 키워드. 운명의 여신의 지독하고 가혹한 장난에 휘말린 억울한 희생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풍경이 나에게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재학 중, 아버지가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그날은 고등학교 3학년 첫 모의고사를 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고 마음껏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은 여유가 넘치는 하루였다. 갑자기 찾아온 비보는 언제나 한 발자국 늦게 본색을 드러냈다. 내가 오늘 아버지와 아침에 인사를 나눴던가? 늦은 회식과 과음으로 힘이 빠진 채 침대에 누워있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현관을 나섰다.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평범한 하루였고 일상이 무한히 반복되는 지독한 것이라고 느낄만한 나이었다.
수술은 10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집도의의 설명에 따르면 중간에 심장이 한번 멈췄다고 했다. 나는 택시에서 울었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어떠한 상태인지 나조차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설명해 줄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분위기만 감지한 채 전화를 끊었다. 그때부터 중환자 가족으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뇌출혈. 나는 첫 직장이 낯설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모든 얼굴이 나의 얼굴이었고 우리 가족의 삶이었다. 나의 첫 직장은 거울의 방이었다.
약물이 mcg(microgram) 단위로 투여되고 꼭두새벽에 환자를 깨워 의식과 운동 반응을 확인해야 하는 공간. 인퓨전 펌프와 실린지 펌프(약물을 정확한 양, 정해진 시간에 투여하는 것을 보조하는 의료기기)가 주렁주렁 매달리고 기계 알람이 쉼 없이 터져 나오는 꽉 막힌 세상. 땀을 뻘뻘 흘리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초점 잃은 눈빛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갖추고 살아 숨 쉬는 순간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수년간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보며 느꼈던 경계가 불분명한 고통 속에 숨겨진 세상의 섭리를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조금씩 늦게 깨닫는 학생이었다.
나이트 근무 중에 중환자실 한가운데 멈춰 병동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원 오프 다음날 만난 새로운 환자들. 내일 오전 수술이 마치면 새롭게 이곳에 들어올 환자들의 빈자리. 일반 병동으로 전동 되었다가 상태가 좋지 않아 다시 돌아온 환자들. 병원 입구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예비 환자들. 뒤이어 늘어진 귀성길을 방불케 하는 차량의 행렬.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의 구덩이 속으로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공기에 무게가 실린 듯한 이상한 기분(이 기분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한번 더 느꼈다). 병동 한가운데에서 꼼짝도 못 하고 서 있는 나. 그 찰나의 시간이 만고의 세월로 느껴졌다.
스스로 판단했을 때 나는 프로의식, 직업의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 자만했거나 오만했던 것 같기도 하고. 간호학생 4년, 해군 의무병 2년, 중환자의 가족으로 7년을 살아오면서 누구보다 타인을 잘 돌보고 이해하고 감싸 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돌봄이라는 행동에 얽혀 살아갔던 나는 우습게도 나 자신을 돌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나를 돌보는 데 실패한 간호사’ 감히 누가 누굴 치료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망과 좌절은 삶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온 나는 살아가야 할 이유를 병원에서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간호사. 자신의 재능과 헌신을 바탕으로 타인을 돕고 회복시키는 직업. 누군가는 진정으로 원하는 길이겠지만,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 나갈 자신이, 아니 확신이 없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큰 고민 없이,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로 이 길을 선택했었다. 급식비를 내지 못해 복도에 서있어야만 했고 EBS교재를 사지 못해 선생님의 연구용 교재를 받아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조금씩 돈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꿈은 취업이 잘 되는 남자 간호사가 되었다.
고3 머리에서 나올법한, 아니 꽤 괜찮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무작정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꿈을 버리고 책임감을 가져야 할 시간이었다. 원하던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준비했던 포트폴리오와 자료를 모아 옥상 담뱃재 항아리에 모두 넣고 태워버렸다. 인내하고 포기하는 삶이 고통스러웠지만 이 또한 삶이라 인생이라 생각했다. 재로 가득한 항아리를 생각하며 아파트 옥상을 몇 번이나 다시 올라갔는지 모른다. 까맣게 부서지고 누렇게 오그라든 종이 위로 담뱃재가 쌓이고 있었다. 옥상을 내려가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아버지의 죽음은 아들을 햄릿으로 만든다.
고시원은 나에게 옥상과 같은 곳이었다. 도망쳐야 할 동굴 같은 장소. <만엔 원년의 풋볼>의 미쓰사부로는 구덩이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나 또한 비슷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동물인지 햇빛이 없는 골방에 처박히기로 결정했다. 머리가 텅 빈 상태에서 이루어진 결정은 비이성적이었지만 효과는 꽤 괜찮았다. 누구도 함께 살지 못하고, 누구도 찾아오지 못하는 고시원 골방에서 생애 처음으로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어떤 하루는 울었고, 어떤 하루는 웃었다. 나는 치기 넘쳤던 고등학생과 아직 만나지 못한 미래의 나를 향해 고해성사를 해야만 했다. 사과를 했고, 약속을 했다.
부끄러운 고백을 마치자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흐르는 시간 속에 놓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흘러 들어올 예측 할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죽음의 목전에 다녀온 사람처럼 유언을 남긴다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나를 휘어 감던 세상의 속박을 하나씩 풀어내는, 펜 끝에 걸린 무동의 살풀이춤!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애석한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상 인간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신 일어나지 못한다고 여겼던 절망의 순간 속에서도 배우고 깨우칠 수 있는 교훈이 있었다. 나는 실패가 아닌 하나의 지독한 경험에 마침표를 찍었다. 모든 추락과 실패는 스스로 좌우할 수 없었던 세상을 배워가는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수술이 끝난 환자가 병동에 돌아오면 담당 간호사는 환자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환자 상태에 따라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숨을 쉬게끔 격려하고, 조금씩 복도를 걸으라고 교육(=다그침)하고. 왜 힘든 수술을 끝마친 환자가 가만히 쉬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까? 조기 이상을 통해 마취로 억제된 폐 기능을 회복하고, 위장관계 기능 회복을 도우며, 순환을 촉진하여 회복 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이든 사회든 달콤한 약과 기분 좋은 주사는 없었다. 회복과 치유에는 때론 고통을 감내하는 자발적 참여가 동반되어야 했다.
다시 일어서고자 했을 때 필요했던 것은 얕고 단발적이며 듣기 좋은 일회성 위로가 아니었다. 일어날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외면했던 현실을 마주하고 주저앉을 용기가 필요했다. 무언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듯한 묘하게 불쾌한 이 느낌. 언젠가 경험했어야 하는 일을 선행 학습했다고 생각해야 할까? 이미 쏟아진 물. 나만의 길을 새롭게 걸어보기로 했다. 나의 걸음이 가장 빠른 걸음이자 느린 걸음이 되는 자유로운 여정을 상상하며. 나는 지금도 제대로 체득하지 못한 삶의 섭리 위에서 새로운 꿈을 쫓고 있다.
고시원에서의 생활은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았다. 망각의 심연으로 떨어뜨리고자 했던 감추고 싶은 상처. 고시원에서의 추억은 기억의 지평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채,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겪었는지 지금까지 잊지 않게 해주고 있다. 흉터는 인간의 망각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기억 전달자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