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인테리어 : 조각보 벽지 이야기
조각보를 아시나요? 자투리 천을 모아 하나의 보자기를 만드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입니다. 알록달록하고 크기가 다양한 천들이 모여 프랙털을 구성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무질서 속에서 만들어지는 조화의 예술, 우리 민족의 절약정신이 돋보이는 슬기로운 전통문화입니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자투리 천을 직접 바느질하여 조각보를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살고 있는 고시원의 벽지를 보면 꼭 조각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곳도 처음에는 하나의 벽지로 이루어진 공간이었겠죠. 그러나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가면서 새로운 벽지가 조각조각 추가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색이 바랬거나 얼룩이 졌거나, 누가 낙서를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기존 벽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문양의 벽지들. 제가 둘러봤던 고시원 중에 한 곳은 방의 모든 면에 다른 색깔의 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꼭 영화 촬영장이나 산업디자이너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같더군요.
제가 살고 있는 방은 침대 위, 창문 아래, 화장실 입구, 현관 입구 곳곳에 새로운 벽지가 덧대여 있습니다. 이전 사용자들이 제법 터프한(?)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벽지 뒷면에 무엇이 있길래... 이런 벽지를 발랐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살짝 찝찝하기도 하지만, 살다 보면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습니다.
제가 주로 생활하는 공간은 책상 앞인데, 책상에서 보이는 벽지가... 딱 적당히 지저분합니다(?). 벽지를 새로 교체하거나 조각난 벽지로 덮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기에는 좋지 않은. 그래서 제가 직접 이곳에 '셀프 벽지 인테리어'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인테리어 재료 비용 2,000원에 인건비 0원. 기적의 셀프 인테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재료는 다이소에서 구매한 1,000원짜리 스케치북과 1,000원짜리 만년필. 그리고 잉여시간이 넘쳐흐르는 저의 오른손을 무상으로 빌려왔습니다. 이 획기적인 프로젝트에 제 게으름이 합류하는 바람에.. 벽 한쪽을 덮을 정도로 그림을 붙일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조각보 벽지(미완) 2021
그림을 배운 적도, 딱히 취미로 삼았던 적이 없기에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그렸던 것 같습니다. 구글에 이미지를 검색해 그대로 따라 그려보기도 했고, 이미지 몇 가지를 머릿속에서 합쳐 새로운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해바라기 배경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려보거나, 시를 쓰면서 떠오른 영감을 그림으로 남기고, 글을 쓸 때 필요한 이미지를 손수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으로 지저분했던 벽 한쪽에 저만의 작은 갤러리가 열렸습니다. 오직 나를 위한, 나만이 만들 수 있는 프라이빗한 갤러리. 새로운 취미와 인테리어 욕구가 만나 저만의 조각보 벽지가 완성되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그림을 한 장 한 장 벽에 붙이다 보니, 이 좁은 골방에 숨을 트이게 만드는 여유공간이 탄생했습니다. 이곳은 선사시대의 암벽처럼 제 고시원 라이프의 흔적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림 한 편 한 편이 불러오는 추억, 그림들이 만나 이루는 낯선 조화. 아직 채워지지 못한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앞으로 내가 채워놓을 세상을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