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tcher in the barley
우도는 다른 여행지에 비해서 지도사가 챙길 것이 많은 곳입니다. 입/출항 시간, 멀미약, 수백 개의 신분증, 우도 관광버스 시간, 다음 여행지를 위해 남겨야 하는 여유 시간까지.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야 하는, 욕만 안 먹으면 훌륭한 고난도(하이 리스크-로우 리턴) 미션이죠. 신분증을 챙기지 못한 학생이 있는지 앞서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유턴을 하네요. 무전기에서 깊은 한숨이 들려옵니다. '팀장님 미안해요...' '얼른 다녀와요...'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고, 대기시간이 한없이 늘어지지만 그럼에도 우도는 소개할 가치가 충분한 섬입니다. 제주에서 가장 맑은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은 바로 우도에 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배를 타보는 아이들은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습니다(아쉽게도 배에 탑승하는 시간은 15분 정도였습니다). 한 발자국 떨어진 제주도와 또 다른 모습을 가진 소를 닮은 섬. 성수기에는 하루 최대 9,000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몰린다고 합니다(우도는 인구 2,0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입니다). 인구 200만 명인 파리에 매일 13만 명 정도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는데 우도에 비하면 파리는 좀 한가한 도시인 것 같습니다.
주머니에 플라스틱 학생증과 구겨진 재학증명서뿐인 학생들은 우도 선착장 앞에 세워진 오토바이와 이륜자동차를 보며 입맛을 다십니다. 속도와 질주를 갈구하는 사춘기 아이들의 헛된 희망과 꿈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우도 관광버스 기사님은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돌담으로 둘러싸인 골목길을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우도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내뱉다가 아이들을 섬 반대편 검멀레 해변에 던져 놓습니다. "아저씨 40분까지 옵니다!" 눈앞엔 땅콩 아이스크림, 소라 짜장면, 와플, 한라봉 주스가 가득합니다. 곧이어 사람들로 가득한 서빈백사 해변에 도착합니다. 어느덧 배를 타고 섬을 나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우도 수학여행은 전형적인 '한국 스타일' 여행입니다. 액기스 위주로 딱 보고, 기념품 조금 사고, 바로 다음 여행지로 가는 것. 이런 이유에서인지 마지막 날 학생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를 묻는다면 '잘 기억이 안 나요'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변화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질문이 많은 담임 선생님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목소리가 아닌 발걸음으로 아이들을 이끕니다. 저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어디가 좋습니까? 여기는 무엇이 있나요? 선생님의 무릎에는 여행 정보로 가득한 A4용지 다발이 놓여 있습니다. 여행을 앞두고 여가 시간을 활용해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선생님. 선생님을 칭찬하고 있자면 기분이 묘해지긴 합니다만 칭찬은 고래도, 학생도, 선생님도 모두 춤추게 합니다. 열정적인 선생님들은 저를 길잡이로 삼고 아이들을 데리고(=끌고) 저를 쫓아옵니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공항에서 90도로 인사를 하며 악수를 건네던 선생님들이 가끔 떠오릅니다. 여행 내내 말썽을 부리던 아이들이 저를 둘러쌉니다. 이번엔 선생님이 사진기사입니다. 어른이 된 홀든 콜필드가 우도의 청보리밭에서 아이들을 이끄는 상상을 해봅니다. 길을 잃어본 이들은 그 길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기 마련이죠. 열정으로 가득했던 파수꾼들에게 청보리와 바람으로 가득한 5월의 우도를 선물하고 싶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