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는 푸른 사막입니다. 어디를 가든 물이 바싹 마른 하천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죠. 한라산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질 때, 바로 이 돌과 먼지뿐인 건천을 통해 배수가 시작됩니다. 건천이 정비되기 전까지는 댐이 터지듯이 물이 쏟아졌고 마을과 사람을 함께 휩쓸었다고 합니다. 건천은 간헐적으로 작동하는 송수로이자 하수도입니다. 섬 남쪽 서귀포는 산 건너 북쪽 동네와는 조금 다릅니다. 폭포와 물길에 깎인 유려한 하천은 서귀포의 자랑입니다.
지질의 특성상 밭농사가 주를 이루었던 제주도에도 소수의 농경지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곳이 바로 천제연 폭포 인근에 있습니. 암벽과 암벽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은 물길. 불을 피우고 술을 부어가며 돌을 깨부수고, 강점기 시절에는 화약을 바위에 둘러 폭파를 시켰다고 합니다. 물이 풍부했던 다른 농경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천제연 수로는 인위적으로 자연을 개척하고자 했던 독특한 사례입니다. 그만큼 제주에선 쌀이 귀하고 값비싼 곡물이었다고 합니다. 도외 지역에서 값싼 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논이 폐답 되었습니다. 수로의 물은 여전히 힘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지리와 한국사, 지구과학을 배웠던 학생들은 흩어진 지식들을 한자리에 모읍니다. 교과서 속 한 두줄의 압축된 정보가 현장에서 명제로 다뤄집니다. 아이들은 토론을 하고, 사진을 찍고, 수로에 손을 담그고, 크로키를 스케치북에 남깁니다. 자연과 협치를 이루고자 했던 과거의 손길은 경이롭습니다. 힘차게 쏟아내는 동맥, 이어지는 작은 모세혈관. 수로 속에는 간절한 기대와 걷어내고자 했던 근심이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미래를 향해 흘리던 물길은 어느새 유적이 되었습니다.
천제연 폭포가 웅장한 오르간이라면 천지연은 화려한 색소폰입니다. 물이 물로 떨어지고, 암벽과 공기 물의 기세에 깎여나갑니다. 아주 조금씩 말라가는 몸속의 수분처럼 폭포도 언젠가는 영원히 후퇴할 겁니다. 자연과 다른 시계를 사용하는 인간은 오래전부터 폭포를 하늘과 신, 영생과 승천의 장소로 여겼습니다. 폭포에서 뿌리와 열매의 냄새가 함께 느껴집니다. 남방의 폭포에서 북방의 건천이 떠오릅니다. 한라산을 둘러싼 *윌리스 고리는 서귀포를 조금 더 사랑하는 모양입니다.
*윌리스 고리 : 뇌의 동맥들이 모여 이룬 고리.
학생들을 불러 모읍니다. 어느새 폭포를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