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항파두리, 사실과 해석

by RNJ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 도민들과 관광객 사이에선 유채와 메밀, 해바라기로 유명한 장소입니다. 학생들은 항몽 순의비 앞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습니다. 단체사진은 인상보다 랜드마크가 중요합니다. 이곳은 아직 발굴 작업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토목 공사 현장처럼 깊게 파헤쳐진 발굴 장소 주변에 바리케이드가 빙 둘러져있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토성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강화도-진도-제주도로 이어진 대몽항쟁은 제주도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바다 건너 마을(濟州)은 삼별초와 몽고군 모두에게 낯선 남방의 섬이었습니다. 7년 전에 군함을 타고 서귀포에 입항했던 기억이 납니다. 갑판 위에서 만난 제주도는 낯선 아름다움이 서린 반-이국적인 섬이었습니다(언젠가 제주에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이 순간에 처음 했던 것 같습니다). 세간의 이목을 끔과 동시에 논란에 휩싸였던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막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채 완성되지 못한 항구에 홋줄을 걸었습니다.


800년 전 섬을 찾아온 이들은 저와 다른 감상에 빠졌을 겁니다. 누구는 적을 기다리고, 누군가는 적을 만나러. 결사를 다짐하고, 귀환을 염원했을 겁니다. 모두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는 못했을 겁니다. 평화는 온 대지가 뒤집어지고 난 다음에야 스멀스멀 찾아옵니다. 마치 감당할 수 있는 넋의 무게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비극의 공백 속에서 태어난 제주의 헤밍웨이들은 테우 위에서 무엇을 낚았을지.


삼별초는 결사항전과 최후의 몸부림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모두 품고 있습니다. 진영과 이념, 이론 같은 도구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전자와 후자의 평가 모두 질문이 아닌 답변만을 던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숨을 잃은 영령들에게 전체주의적 해석을 덧붙이는 일이 도둑질처럼 느껴집니다. 듣는 이 없이 말하는 이들만 있습니다. 전투가 벌어졌고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 죽음 앞에서 많은 것들이 무용해집니다.


쇠와 피로 덮인 무덤 위에서 역사를 쓸 수 있었을까요? 한 개인의 최후는 국가로부터, 사가(史家)로부터, 특정 집단으로부터 수백 년간 쉼 없이 도굴당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해를 넘어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600만의 난민과 30만 명의 사망자. 지금 이 순간에도 항전과 몸부림, 전진과 후퇴가 이어지고 있을 겁니다. 피폐해진 현재와 노략질당한 미래. 언젠가 그곳에도 봄이 찾아올 겁니다. 유채와 메밀, 해바라기가 만발한 항파두리처럼. 우리는 비극의 간극에서 살아 숨 쉬는 운 좋은 중생들일뿐이었습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창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국가의 시각에서 지역의 시각으로, 집단의 시각에서 개인의 시각으로. 어딘가의 일부로만 존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말처럼 우린 전체이자 부분입니다. 많은 권력자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항파두리에 사진을 남기기 위해 찾아왔다고 합니다. 예산 부족으로 수년째 발굴 작업이 지지부진하고 있다는 말이 이어서 들려옵니다. 부분은 여전히 묻혀있고, 전체는 침묵합니다.


단체사진을 찍고 학생들과 함께 토성길을 걷습니다. 꽃밭에 모여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학생도 해바라기를 꺾지 않았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중섭거리, 오래된 예술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