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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팔리면 기쁠 줄 알았다

by RNJ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 하는 것도 예술이고,
비즈니스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앤디 워홀


"가격을 정해야 한다고요?"


신나게 그릴 줄만 알았지 그림 가격을 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평생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살아온 나에게 가격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읽고 판단(비싸네, 저렴하네, 수상하네) 해야 하는 공산품의 또 다른 이름표였다. 고민하고 창작해야 할 것이 하나 늘어버렸다!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아 먼지가 소복이 쌓인 경제 서적 몇 권을 뒤적였다. 수요-공급 그래프. 시장 가격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해설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간호학을 전공한 현직 논술 교사의 그림에 무슨 수요가 있을 것이며, 공급은 기껏해야 일주일에 2~3장. 수요와 공급이 모두 시원찮은, 아마추어의 예술품 가격을 감정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다. de-객관성과 de-심미안을 탑재한 작가의 고민은 '떨이'와 '사치품' 사이에서 요란한 진자 운동을 시작했다.


장고 끝에 구글에 '미술작품 가격'을 검색했다. 그림의 사이즈인 '호'를 기준으로 그림의 가격을 결정한다는 여러 모호한 답변을 확보하긴 했는데.... 반쯤 뜯겨나간 스케치북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스케치북 껍데기에 선명하게 적혀있는 'A4 사이즈'. 이건 도대체 몇 호일까? '그림 가격'을 다시 구글링 했다. 작가의 인지도, 경력, 작품성에 따른 다양한 기준표가 나왔다. 대학물과 나이를 먹은 그림은 가격이 조금 오르는 모양이었다. '갓 미술 대학을 졸업한 작가는 호당 몇만 원...' '경력이 오래된 예술가는 부르는 게 값이며...' 0년 차 아마추어를 위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아트 카페에 모여있는 작가님들을 찾아갔다.


"제일 마음에 드는 그림 하나 제일 비싸게 불러 뿌라! 팔아 무야 또 재료도 사고 시간도 생기지!"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자유로움과 조화를 함께 추구하는 우아해 모임에서 작품 가격은 속칭 '시가'로 결정되었다. 화랑이 재무제표같이 생긴 금액 산정 기준표를 들고 고객을 맞이하는 백화점이라면 동호회 미술은 플리 마켓에 가까웠다(비싸유? 돌아보고 와요~). '예술의 목적은 돈이 아니다'라는 나이브한 통념에서 벗어나자마자 부끄럽게도 매출에 대한 탐욕이 솟아났다. 2+1, 1+1 이벤트라도 해야 하나? 하나도 안 팔리면 어떡하지? 때늦은 곤혹스러움에 딱 하루정도 밤잠을 설쳤던 것 같다. (물론, 그림을 사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사람은 아직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작가님들의 참된 조언을 바탕으로 가격표를 완성했다.


팔리지 않을 걱정에 가격을 깎지도, 너무 잘 팔릴 걱정(?)에 가격을 양심 없이 올리지도 않았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마음을 휘둘리지 말고 그림을 그리는 일, 통제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만약에 그림이 팔린다고 하더라도 예술과 창작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질 때나 가능한 일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옹졸한 정신 승리이긴 하지만 그림이 안 팔릴 때 언제나 필살기처럼 남용할 수 있는 인물이 한 명 있다. 평생 한 점의 그림을 팔았고, 약값이 없어서 그림으로 대신 값을 치렀다는 빈센트 반 고흐. 하나만 팔아도 어깨를 비빌 대작가가 있다는 사실은 아마추어 작가에게 염치없는 자신감을 선사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림이 팔렸다(이제 약값으로 그림을 내기만 하면 나도...)! 액자집에 가서 이쁜 나무 프레임을 하나 주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눈에 담고 고객에게 그림을 전달했다. 종이와 펜으로 신사임당을 만들어내다니 훌륭한 지폐 제작범이 된 기분이다. 계획 없이 떠난 여행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목적 없는 발걸음이 나를 우아해 멤버들에게 이끌었듯이, 전시회라는 새로운 도전 속에서 이색적인 경험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가격을 정하고 전시회를 오픈했을 때, 그림이 팔리면 참으로 기쁠 줄 알았다. 막상 팔아보니... 정말 기뻤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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