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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J Jun 18. 2024

창살

 

 아기가 부지런히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모든 문에 창살형 안전문을 설치했다. 활동량이 크게 늘어난 덕분에 몸무게 정체기가 찾아왔고, 집안 곳곳을 기어 다니느라 아기의 엄지발톱은 성한 날이 없었다. 우리는 콘센트를 막고 화분은 음지로 옮겼다. 아기 엄마의 손에선 돌돌이가 떠날 새가 없었다.


 아이를 마루에 풀어놓고 창살 너머로 도망친(?) 부모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혼자 놀다 금세 심심해진 아기는 안전문 창살을 쥐고 흔들며 우리를 부른다. 아이가 활발해질수록 부모의 삶은 급격한 속도로 흥미진진해진다. 육아책을 읽다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싸늘하다. 


 아기가 깊은 잠에 빠져들면 집안의 모든 안전문이 활짝 열린다. 그러나 육퇴를 할 때 즈음이면 체력이 이미 모두 소진되어 침대나 소파에 파김치처럼 널브러지기 일쑤였다. 우리의 자유는 언제부턴가 만성 피로라는 유리병 안에 절어져 있었다. 요즘은 소리 없이 눈으로만 넷플릭스를 보다 잠에 빠져든다. 디카페인 커피는 값비싼 무용지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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