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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소 Aug 22. 2023

엄마, 잘 살지 못해 미안해.....

친정엄마에게 하지 못한 말





아이가 태어나고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기 위해 친정 근처로 이사를 왔다. 친정 엄마는 손주가 태어나자마자 거의 매일 같이 손주를 보러 집으로 오셨다. 명분은 손주를 보러 온다는 것이었지만 그 속은 본인의 딸이 힘들 테니 도와줘야겠다는 어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집에 오시는 날, 잠을 못 자 꾀죄죄한 딸에게 항상 하신 말씀이 '낮잠이라도 자야 새벽에 아이를 볼 수 있지 않겠냐'며 일단 방에 들어가서 눈 좀 붙이라고 하셨다. 엄마 덕분에 나는 신생아 육아 중에 감히 꿈도 못 꾸는 낮잠이란 것을 잘 수 있었고 육아가 조금은 수월해졌다.


매일 같이 오셔서 남편이 오기 전까지 아이를 봐주셨지만 외벌이 월급 가지고는 이렇다 할 사례는 할 수가 없었다. 엄마 또한 금전적인 것을 바라시지 않으셨다. 챙겨드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미안했지만 그땐 아이를 키우는 일이 많이 버거웠기 때문에 친정 엄마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에 친정엄마가 옆에 계신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래서 딸은 엄마가 필요한 거구나, 딸은 평생 엄마를 벗어날 수가 없구나 생각했다.

나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그 순간에도 친정엄마 옆에서 출산하고 싶었지만 친정 엄마만 불렀다고 시댁 어르신들이 서운해하실까 봐 차마 부르지를 못했다. 그리고 혼자 아이를 낳았다. 출산 직후 엄마에게 아이를 낳았다고 전활 드렸을 때, 떨리는 목소리로 왜 부르지 않았냐며 많이 서운해하셨고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왜 출산할 때도 시댁 눈치를 봤어야 했을까..

눈치 보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어쩌면 인생에 한 번뿐인 출산일수도 있는데 하나밖에 없는 딸의 출산을 함께 해주지 못한 친정엄마가 느낄 죄책감에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남편과의 불화로 점점 시들어가던 나는 손주를 봐주시러 집에 오시는 엄마를 보며 밝게 맞이할 수가 없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시댁과의 갈등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친정엄마에게는 차마 시댁에서 딸이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산다는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낼 수가 없었다.

엄마는 가끔 "요새 뭔 일 있냐?"라고 나를 떠보셨지만 "일은 무슨 일~" 하며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힘들 때마다 엄마는 ‘내가 모를 것 같냐’며 ‘딸 얼굴만 봐도 엄마는 알 수 있다. 무슨 일이 있구나.’ 하시며 마음을 읽어주셨다.


분명 지금의 엄마도, 나의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하셨을 것이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시댁에서 미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친정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느니 나 혼자 아프고 말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은 혼자 친정에 가게 되어 부모님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화가 끓어 올라 나도 모르게 남편 흉을 보게 되었다.

"맨날 술 마시면서 자기 와이프가 당하는 걸 보고만 있고 진짜... 아빠, 우리 시댁은 우리 집이랑 너무 달라."

아빠께서는 내 얼굴을 바라보시며 한 말씀하셨다.

"로마에 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의외의 대답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딸 편을 들어줄 거라 예상했던 과는 전혀 다른 대답에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아빠는 분명 딸이 담담하게 이겨나가길 바라시며 하신 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딸의 결혼생활을 응원해. 그러니까 약한 소리 할 거면 집에 오지 말아라."

어딘가 힘들어 보이는 딸에게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신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더 이상 징징대지 않고 알겠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힘들어도, 엄마 아빠에게 시댁과의 모든 일을 말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짐작만 하는 것과 실제 딸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은 천지차이니까.

'엄마, 아빠 미안해... 내가 행복하지가 않아. 그래도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잘 헤쳐나갈 수 있게 응원해 줘... 그리고 늘 옆에 있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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