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워킹홀리데이 #11 그라나다에서 다시 만난 마누엘
2월에 다녀왔던 2주 간의 홀리데이에 있었던 일이다.
모로코의 페즈에서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는데 마누엘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 어떻게 지내?'
영국에 처음 와서 갓 집을 구하고, 일을 구해야겠다 마음먹고 이곳저곳 CV(이력서)를 넣고 있을 때 만났던 마누엘.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펍에서 일하던 친구다. 마침 풀타임으로 일하던 마누엘이 가게를 떠날 때 내가 이력서를 내러 가게에 왔고, 나와 만나고 잠깐 얘기한 것 만으로 'Jo를 뽑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줬던, 옛 브런치 글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 친구다. 그 덕분에 난 지금 일하는 우리 펍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나 정을 붙일 수 있었다. 아직도 마누엘에게는 참 감사한다. 지금 우리 펍, 내가 만나는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런던은 지금과 같지 않았을 테니까.
어쨌든 마누엘이랑 정작 만난 건 딱 두 번이다. 하지만 마누엘은 스페인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종종 나에게 안부를 묻고는 했다. 하지만 이 날 내가 여행 중 페즈에서 받은 '잘 지내'는 다른 안부 인사보다 조금 더 특별했다. 내가 여행 중이고, 조금 있다가 스페인을 간다고 하자마자 마누엘이 즉각적으로 '스페인? 그럼 내가 너 보러 갈게!'했기 때문. 알고 보니 내가 향하는 스페인의 그라나다와 마누엘이 사는 곳이 차로 한 시간 남짓한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만났다.
그간 어떻게 지냈냐며 진하게 포옹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고작 한 두시 간쯤 보냈을 때였을까. 마누엘이 나에게 가라며 등을 떠밀기 시작했다. 내가 그라나다에 있는 시간은 단 하루. 하룻밤을 자기는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 바로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롯이 하루만 관광에 투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알람브라 궁전을 포기하려고 했다. 알람브라 궁전은 이 궁전을 보러 가기 위해 그라나다에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크기나 예술적인 가치로나 어마어마한 곳이다. 하지만 마누엘은 일에 오프까지 내고 급하게 나를 고작 몇 시간 보러 멀리서 와줬는데, 내가 알람브라 궁전에 들어가서 몇 시간을 보내버리면 마누엘이 이렇게 달려온 보람이 없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궁전보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가 더 소중했다. 그래서 마누엘에게 '나 알람브라 궁전 안 가려고!'라고 말을 꺼냈더니, 얘가 날 떠밀기 시작한 거다.
'알람브라에서 최소한 3시간 이상 안 있으면 내 평생 너 다시는 안 본다?'
정확히 마누엘이 한 말이다. 듣고 한참을 웃었고, 그래도 널 어떻게 혼자 기다리라고 하고 관광을 가냐며 거절했다. 하지만 마누엘은 정말 단호하게 다시 날 떠밀었다. 이 도시는 자기가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라며, 내가 이 도시를 완전하게 즐기지 못하고, 볼 걸 다 보지 못하고 떠나면 자기가 슬플 것 같다며 말이다. 그렇게 결국 마누엘은 알람브라 궁전까지 날 (강제로) 데려다줬고, 입장하는 모습까지 보고 나서야 웃으며 '3시간 뒤에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알람브라는 정말 아름다웠다. 다 보고 나와 마누엘에게 웃으며 '너 말고 알람브라 보러가길 잘 한 것 같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알람브라를 다 보고 나오니 정작 마누엘을 볼 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우리는 서둘러 근처의 펍을 찾아 함께 맥주를 먹었고, 낮에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우리 펍 이야기들, 마누엘의 요즘 일상, 마누엘이 떠난 후의 펍 이야기들, 나의 이야기 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알게 된 마누엘이라는 친구. 단 몇 시간이지만 진솔하고, 깊게 얘기하면서 이 친구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해 질 녘 즘, 마누엘은 내일 일을 위해 이제 그만 돌아가 봐야 한다며, 마지막으로 보여줄 게 있다며 날 어디로 끌고 갔다.
그리고 도착한 이 곳.
마누엘이 학창 시절 종종 오고는 했다던 곳이다. 그라나다 전경이 한눈에, 멋진 석양도 덤으로 함께 보이는 언덕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참 서서 해가 지는 걸 바라보다 내려와서 헤어졌다. '곧 런던으로 갈 테니, 펍 사람들과 다 같이 보자'며 마누엘은 활짝 웃으며 떠났다.
마누엘과 만난 건 단 몇 시간. 어떻게 보면 참 짧은 시간이다. 사실 실질적으로 마누엘을 본 시간은 런던에서 본 걸 다 합쳐도 고작 12시간, 하루 반나절도 안될 것 같다. 하지만 그라나다에 마누엘과 함께 있던 몇 시간 동안 나는 마누엘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고 자부한다. 그는 고작 두 번 본 친구를 위해 오프를 내고 기꺼이 먼 길을 운전해서 달려오는, 그 친구가 혹시나 도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 궁전으로 떠밀고 자기는 세 시간이나 홀로 거리를 거닐며 기다리는, 펍에서 일하던 때를 얘기하며 진심으로 스태프들 모두를 그리워하는, 아무 이유 없이 그 사람들만 보러 런던에 올 계획을 짜고 있는, 마누엘은 그런 따뜻한 사람이다.
나와 헤어진 이후에 마누엘이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글에 괜히 또 마음이 짠했다.
'I hugged a piece of London today.'
간단한 안부 인사지만 동시에 큰 힘을 가진 말, 'How are you?'.
스치는 생각으로 '얘 잘 살고 있나' 궁금해 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직접 전화든, 문자든, SNS를 통해서든 먼저 연락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짧은 문장을 길게 해석해서 읽고는 한다.
'네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 이렇게 연락할 만큼 너를 생각하고 있어, 보고 싶다'
그리고 '보고 싶다'는 마음이 서로 맞닿을 때, 이 짧은 인사는 만남의 방아쇠가 되기도 한다. 마누엘과 내가 만났듯이 말이다. 그라나다에서의 만남 뒤로 우리는 좀 더 자주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게 되었다. 다음번 런던에서의 만남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