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에서 모나코 여행
니스에 머물며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이 비었다. 칸 때문에 무작정 예매한 비행기지만 여유롭게 머물고 싶어 일정이 좀 넉넉했다. 니스를 좀 더 둘러볼까 하다가 근교에 있는 나라 모나코를 둘러보기로 했다. 프랑스 니스에 거점을 잡으면 좋은 게, 주변의 소도시를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쉽게 방문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모나코는 니스에서 갈 수 있는 곳들 중 가장 매혹적인 곳이다. 바티칸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프랑스를 제외한 나라들에게 면세를 해줘 세계 이름난 부자들이 몰리는 나라, 국가의 주 수입이 카지노인 나라. 구미가 당겼다.
니스 기차역에서 30분 정도 걸어 LePort라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여기서 모나코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모나코로 가는 기차가 훨씬 편하기는 하지만 굳이 버스를 타기로 택한 건 버스로 모나코를 가는 길에 오른쪽 창문으로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기 때문. 버스에서 혹시나 창가 오른쪽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던 걱정도 잠시, 버스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버스보다 훨씬 길어서 여유롭게 착석했다.
버스가 출발했다. 오전 11시쯤이었을 거다. 해가 중천에 떠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밝고, 그 햇빛에 바닷물이 반짝반짝 빛났다. 바닷물이 참 새파랗다. 거기에 파도 없이 잔잔하게 요동치는 물결이 햇살과 함께 일렁인다. 해안 도로는 이탈리아의 아말피 해안도로와 느낌이 비슷했다. 조금 더 작고 귀여운 버전의 아말피. 이런 생각을 하다 잠깐 멈췄다. 여기는 엄연히 다른 곳이고 다른 매력이 있을 텐데, 굳이 유명 관광지의 이름을 따서 붙일 필요가 뭐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든 거다. 그래서 그냥 창 밖을 바라봤다. 여행하며 느끼는 것 중 한 가지- 비교하지 말 것. 여행지를 여러 군데 다니게 되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이 장소 저 장소를 비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러면 결국 내게 오는 건 실망이나 아쉬움뿐이라는 것. 비슷한 여행지도 분명 각자의 매력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비교를 멈추고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버스 안에서도 마찬가지, 비교를 멈추자 지금 순간 자체가 그냥 아름답고 행복했다.
모나코에 도착해서 시내 한가운데에 내렸다. 모나코 성을 보기 위해서는 언덕을 올라야 했다. 그다지 가파른 편은 아니지만, 운동과는 담쌓고 지내다 보니 정상에 올라서는 숨을 골랐다. 오르막을 오르느라 힘을 다 뺐지만 그것도 잠시, 모나코의 거리들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또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동전 지갑 하나 달랑 들고 길을 나섰으니 몸도 가볍겠다, 이곳저곳을 두 발로 누볐다. 모나코는 일단 도착만 하면 다른 어떤 교통수단 없이도 나라 전체를 둘러보는 게 가능할 정도로 작다. 모나코를 누비며 내 두발로 한 나라를 정복한다는 느낌이 들어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모나코는 딱히 유명한 유적이 있는 것도, 유달리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다. 항구를 가득 메운 부자들의 요트, 이름 난 부자들이 몇 채쯤은 갖고 있을 것 같은 예쁘고 높은 아파트들. 그걸 보고 나니 사실 날 모나코로 끌고 온 모든 호기심 갈증이 해소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나코에서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낸 건, 모나코 왕궁을 시작으로 뻗어있는 갈래갈래의 길들에 흠뻑 빠졌기 때문. 모나코의 거리들은 다른 유럽들보다 훨씬 더
정돈되고, 깨끗한 느낌인 데다가, 따뜻한 색을 가지고 있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해에 그 붉은 건물들이 더 따뜻하게 물든다. 모나코의 매력은 다른 것보다 이런 골목골목에 있었다.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이 들 수가 없는, 사실 계획 짤 것도 많지 않은 작은 나라이기에 오히려 마음의 짐을 덜고 걸음을 가볍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골목들을 누빌 수 있다는 것.
한참 걷다 보니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바다는 해 때문에 반짝반짝 빛이 난다. 파란 하늘, 그보다 더 파란 바다, 두 가지 색이 경계를 이 루어 만들어 내는 수평선, 반짝임. 한참 넋을 놓고 바라봤다. 사실 모나코에 오기 전까지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칸 영화제를 즐긴답시고 사전 조사를 한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영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틀이나 연속 새벽 5시 반에 일어났으니 평소 내 성격에 당연도 하다. 물론 영화제 자체는 행복했지만 영화제를 위해 나 자신을 조금 쪼아댔다. 그런 마음의 짐들을 벗은 상태라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멍하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이 여유가 좋았다. 스페인 순례자의 길을 걸을 때 생각도 났다. 그때도 밥을 먹고, 걷고, 바람을 느끼고, 쉬고 싶을 때는 가만 앉아 풍경들을 가만 바라보는 그런 단순한 생활에서 오는 행복이 얼마나 큰 가 느꼈었다. 욕심부리지 않아도 되는 삶. 이런 단순한 행복도 사람을 이렇게 충만하게 만들어줄 수 있구나 하는 것들. 여기 바다를 보면서 엄마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지금 보고 있는 바다와 내가 느끼는 행복을 전해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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