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부쿠레슈티(부카레스트) 여행
길었던 그리스 여행을 끝내고 아테네에서 루마니아로 향했다. 사실 루마니아, 여행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던 도시다. 이전까지 루마니아 하면 내가 제일 처음 말할 수 있던 건 우스꽝스럽게도 '드라큘라' 정도였을 거다. 유럽을 조금 돌아다니고, 영국에 살게 되며 루마니아에 대해 조금 더 얻게 된 아이디어도 많은 집시들이 이 곳에 산다는 것, 아마도 과거 공산주의 국가의 느낌이 풀풀 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고작. 사실 어떤 분위기의, 어떤 사람들이 사는 나라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 루마니아로 향하게 된 이유도 경유 차원이었다. 영국 펍에서 함께 일하던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의 친구, 그 친구의 고향이 어떤 곳일까 알고 싶었고, 그래서 그리스에서 시칠리아로 향하는 가장 저렴한 방법을 찾다가 루마니아가 나타났다. 루마니아를 거쳐 시칠리아로 가는 것이 그리스에서 곧장 시칠리아로 가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몸이 좀 고생하더라도 뭐 어때, 나는 가난한 배낭여행자니까-하는 생각으로 루마니아로 가는 티켓을 무작정 예매했다. 심지어는 최저가를 맞추기 위해 루마니아에 머물 시간이 고작 하루뿐이었다. 여행을 내키는 대로 마구 하다 보니 가끔 이런 일도 생긴다. 도시를 다 보겠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지만, 그래도 고작 1박 2일뿐인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를 최대한 즐기기 위해 '카우치 서핑'을 택했다.
카우치 서핑이란, 문화 교류를 위해 사용되는 소셜이라고 볼 수 있다. 카우치, 말 그대로 남의 소파를 빌린다는 의미로, 현지인이나 그 도시에 사는 주민이 여행자에게 카우치를 내어주고 서로 문화를 교류할 수 있도록 만든 네트워크라고 보면 된다. 물론 만남 전에는 인터넷 상 프로파일과 다른 사람들이 적어준 레퍼런스만을 통해 서로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기에 완전히 안전하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제껏 여행을 하며 겪었던 좋은 경험들 중 많은 것들이 이 카우치 서핑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라, 나는 앞으로도 계속 카우치 서핑을 이용해 종종 여행을 할 예정이다. 몇 가지 점만 주의해서 신중하게 호스트를 고르면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관광객들은 자칫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현지인들만 아는 장소에 가거나, 도시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을 수도 있고, 호스트와의 대화를 통해 이 사람의 가치관, 폭넓게는 이 나라 사람들의 생각들까지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에 도착했다. 사실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 한 중심에서 내렸을 때는 조금 긴장했다. 여행지에서는 의도하지 않아도 처음 도시에 대한 인상을 받고 대강 '이 도시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구나' 정의하기 전에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경계를 하는 편이다. 그리고 사실 '부쿠레슈티 여행'으로 검색했을 때 나왔던 글들 중 몇몇이 소매치기, 집시, 왠지 음산한 도시 분위기 등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고, 런던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마저도 내가 루마니아로 향한다고 하니 조심하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공항버스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호스트 집으로 향했다. 호스트의 집은 센터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정도로 가까웠다. 지하철 표는 얼마나 쌌는지, 아마 5백 원쯤 했나. 지하철에 들어가면서부터 루마니아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깔끔하지 못했고, 덜 단정된 분위기였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어느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야 되냐고 묻는 내게 영어는 못해도 성심 성의껏 길을 알려주려던 사람들 덕에 긴장도 한결 풀렸다. 루마니아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산에 둘러 싸인 드라큘라가 사는 고성이 수도에 있을 리가 없는데, 그런 걸 상상하면서 부쿠레슈티에 온 거다 나는. 루마니아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도시였다. 하긴,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훨씬 큰 나라의 수도인데 이 정도는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내 호스트인 팻은(실명이지만 내 임의로 줄여서 부르겠다) 웃는 상의 귀여운 내 또래 여자였다. 내가 오자마자 침실에서 나와 활짝 웃는 얼굴로 반갑게 날 맞아줬다. 팻의 프로필 레퍼런스에서 읽었던 말들이 바로 와 닿았다. 상냥하고, 웃는 얼굴에, 대화하기가 좋다. 그대로였다. 오자마자 팻은 나에게 배고프지 않냐며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 간단한 요리를 해주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도 집에 함께 있었다. 둘은 완전히 다르게 생겼지만 똑같이 웃는 상이라 그런지 풍기는 인상이 비슷했다. 팻의 남자 친구는 일이 있다며 나중에 보자고 금방 집을 나섰고, 팻과 나는 부엌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 낯선 이들, 가령 호스텔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길을 가다가 말을 트게 되는 사람들 등, 과 말을 하다 보면 몇 분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잘 통한다'는 느낌이 오는 사람들이 있다. 팻이 그랬다. 억지로 대화 주제를 끄집어내지 않았는데도 물 흐르듯이 얘기가 흘러갔다.
"사람들은 루마니아에 집시들만 살 거라고 쉽게 생각하고는 해."
팻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루마니아에 실제로 와보고는 깜짝 놀라는 이유가, 자신들의 편견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 때문이란다. 유럽에 전역에 흩어져있는 많은 집시들이 실제로 루마니아 출신이기는 하지만, 루마니아에 집시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루마니아에 다들 편견을 가지는 게 슬프단다. 이 얘기를 듣고 나조차도 잠깐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팻의 집에 도달하기까지 잔뜩 긴장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 전역에서 들리던 그런 뜬소문들 탓이 컸으니까 말이다. 이것을 비롯해 드라큘라 이야기, 공산주의 시절의 루마니아 이야기 등에 대해 많은 것을 들었다. 건물들이 큼지막하고 다소 각지며, 일관적이라고 생각했던 게 역시 공산주의의 영향이 크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똑같은 인상을 크로아티아나 헝가리에서도 받은 적 있었다.
팻은 내가 부쿠레슈티를 다 보기에는 너무 짧게 머물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부쿠레슈티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부쿠레슈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밤 문화'란다. 사실 내가 오후쯤 부쿠레슈티에 도착했고, 오전 비행기로 시칠리아로 곧장 향해야 하니 밤 문화밖에 볼 게 없다면 없었지만, 이런 말을 들으니 그래도 유명한 문화 하나는 체험하고 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팻의 말로는 유럽 전역, 특히 영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루마니아로 밤을 즐기러 온단다. 맥주, 샷, 다른 술들이 엄청나게 저렴하고, 루마니아 여자들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기 때문. 이 말을 듣자 술이 얼마나 저렴할지, 또 정말 듣던 대로 '예쁘다'라고 칭해지는 루마니아 여자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혼자 호스텔에서 머물렀다면 아마 오후에 잠깐 구시가지를 돌아다니고, 저녁에 맥주 한 잔만 하고 다음 날 비행을 위해 잠을 청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팻 덕에 나는 꽃단장을 하고 밤거리로 나섰다. 꽃단장이라고 칭했지만 사실 잦은 비행에, 오랜 여행으로 인한 꼬질꼬질함을 헹궈내 사람 꼴을 갖추는 정도였지만.
보통 어둑해지면 대부분의 것들은 생기를 잃거나 고요해지기 마련인데, 부쿠레슈티의 구시가지는 어둠으로 물든 거리가 훨씬 더 활기찼다. 밤거리의 조명, 술을 들고 테이블에 앉거나 서서 마시는 사람들, 거리마다 가득한 음악, 때로는 흥에 못 이겨 내지르는 소리들까지. 거리를 둘러보며 루마니아에서의 시간을 짧게 잡은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워졌다. 자유여행의 좋은 점은 어떤 나라, 어떤 도시에 얼마만큼 머무를지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인데, 사실 예산이 빠듯한 경우에는 완전히 즉흥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기가 힘들다. 막상 도시에 도착해서 얼마나 머무를지를 정하고 표를 구매하려고 하면, 대개는 표 수량이 빠듯하거나, 남아 있는 표들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특히나 유럽 여행의 경우는 비행기 표를 미리 예매하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루마니아도 도착하기 한참 전에 시칠리아에 가기 전에 하루만 머물자고 결정하고 표를 구매한 경우였다. 거리 곳곳을 먼저 구경시켜주는 팻에게 여기에 하루만 있는다는 게 너무 슬프다고, 정말 정말 후회한다고 마구 절규했더니 팻이 깔깔대며 웃더니 "나한테 진작 물어보지 그랬어!"한다. 그러게, 너와 여기 오기 전부터 친구였다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먼저 전망이 좋다는 어느 호스텔 꼭대기 옥상에 위치한 바로 향했다. 거기에 팻 친구가 일을 하고 있단다. 하지만 친구 때문에 가는 건 아니고, 이 호스텔에서 루마니아 구시가지의 예쁜 밤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옥상을 올라가려니 꼭대기에 다 올라서는 숨을 헥헥거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시끌시끌한 펍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이 바깥은 이상하게 고요해 보였다. 돔을 비추는 은은한 조명, 거기에 날아다니는 정체 모를 새 무리를 보고 있자니 주변 소음마저 이상하게 잔잔해졌다.
여기서 팻과 문화 얘기 같은 사소한 것들 부터 시작해 자신의 가치관, 인생의 목표 같은 거창한 얘기까지 폭넓은 대화를 나누었다. 카우치 서핑을 하며 느끼는 건,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는 사뭇 진지한 얘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기가 조금 더 쉽다는 것. 그냥 마구 '우리 놀자! 술 마시자!'하는 으쌰 으쌰 한 분위기가 아니라, 모두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를 하고 나오고, 자기 스스로도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낼 각오를 하고 오기 때문이다. 팻은 나와 비슷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을 사랑하지만, 아직 '무엇을 해야겠다'는 확신은 없는 상태. 하지만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즐기며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카우치 서핑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20대 중반, 가족을 떠나 혼자 자립하고, 슬슬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야 하는 때. 나이로는 성인이 된 지 한참이지만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칭하기 어색한, 어디론가 넘어가는 과도기 같은 때.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너무 새파래서 무섭기도 한 바다를 둥둥 떠다니며 표류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팻도 똑같이 표류 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팻은 나보다 좀 더 이 불확실함을 즐기고 있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베풀고, 그러면서 자신이 배의 키를 잡아 너무 부유하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팻에게는 이 불확실함은 좀 더 세상을 넓게 보고 내 미래를 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 거다. 팻의 말을 들으며, 어차피 표류해야한다면 나도 새까맣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에 집중하기보다는, 주변을 둘러보고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팻은 이 펍 이후에도 부쿠레슈티의 유명한 펍, 심지어는 클럽까지 이곳저곳 나를 데려다주었다. 재미있던 것은 여기서는 동양인이 흔하지 않아 어디를 가든 모두가 나에게 시선을 집중한다는 점. 무례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흘끗흘끗 나를 쳐다보는 것에서 그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선을 쭉 나에게 고정한 채로 '신기해'하는 표정을 거리낌 없이 내비쳤다. 슈퍼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시선은 동유럽을 여행하면서도 많이 느꼈지만 루마니아는 사실 한국에서도, 다른 아시아 나라에서도 그렇게 인기 있는 여행지는 아니라 그런지 나에게 꽂히는 시선이 훨씬 심했다. 결국 나중에는 그냥 '예, 예, 저 연예인이에요.'하며 그냥 자포자기하게 됐다. 사실 인파가 많은 거리를 지나다가 누군가 내 엉덩이를 꽉 움켜쥐고 도망가는 일도 있었으며, 어느 클럽에서는 40~50대로 보이던 남성이 테이블을 붙잡고 마치 성행위를 하는 양 허리를 움직이며 나를 계속 응시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날 쳐다보는 '그냥 시선'들에는 오히려 담담해진 거다.
또 다른 것은, 대부분의 펍과 클럽 테이블이나 바 위에 봉이 있고, 거기서 많은 여자들이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봉 춤을 추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팻의 말대로 여기저기서 영국 악센트를 쓰는 서양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 술은 어찌나 저렴한지, 팻의 말에 의하면 그나마 비싼 중심지에 있는 펍인데도 불구하고 맥주 한 잔이 유로로 환산하면 2유로(우리나라 돈으로 약 2천6백 원), 보드카나 테킬라 샷도 그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런던에서 생활할 때 먹던 맥주가 기본 5파운드(약 7천5백 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거의 3분의 1 가격인 거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이곳저곳 펍을 옮길 때마다 술을 시켜 마셨고, 나중에는 결국 배가 불러서 더는 술을 들이킬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다음에 루마니아를 가게 된다면 맥주 대신 루마니아 전통 술인 팔린카(Palinca)를 종류 별로 맛볼 테다. 과일을 증류한 거라 그런지 맛과 목 넘김이 다양했는데 배도 부르고 알딸딸해져서 더 맛볼 수가 없었다. 물론, 도수도 굉장히 높다. 내가 이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린 것은 맥주보다는 바로 이 팔란카 때문일 거다.
팻의 남자 친구도 합류했다. 우리는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팻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즘 핫한 야외 펍'으로 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 팻의 집으로 가서 조금이나마 잠을 청하기로 했다. 내가 다음 날 꽤나 일찍 일어나 공항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고마웠다고, 덕분에 혼자 다녔으면 몰랐을 장소들을 덕분에 많이 알게 됐다고 연신 감사를 표하자 팻은 자기가 오히려 여기저기 더 많이 데리고 다녀주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그러더니 집에 가는 길에 굳이 차를 돌려 부쿠레슈티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명소까지 들러주었다. 아, 물론 운전은 술을 안 먹은 팻의 남자친구가 했다. 인민 궁전. 새벽이라 조명도 꺼지고, 아무도 없었지만 세계에서 2번 째로 큰 건축물이라는 명성답게 그 거대함만은 잘 느낄 수 있었다. 모두 3천2백 개의 방이 있다는 건물, 완공하는 데 20년이나 걸렸지만 딱히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건물은 아닌 듯했다. 사실 이렇게 비성장적으로 거대한 건물의 배경에는, 루마니아 독재 시절의 아픔이 서려있다. 독재자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 자국의 경제 상황은 무시한 채 공사에 집중했고,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노역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거대한 건물은 조명이 다 꺼져 어둑어둑한 채 새벽 달빛만 받아 빛나는 게 오히려 더 어울렸다. 밝은 해나 화려한 조명보다는 옅은 달빛을 받는 정도가 딱 어울리는 사연을 가진 건물이었다. 이걸 마지막으로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술을 마시던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한 거리에서 은은한 달빛만이 있는 곳에 들렀다 팻네 소파에 누웠더니, 마지막으로 봤던 조용한 인민 궁전의 이미지와 함께 처음 갔던 펍에서 내려다본 풍경, 조명과, 날아다니던 새와, 돔의 잔상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나를 투어 시켜주느라 피곤했을 팻이 떠올랐다. 조용하고 은은한 루마니아의 모습과 함께 팻에 대한 고마움과 따뜻함이 밀려오면서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느낀 것은, 다른 게 어지간히 인상 깊지 않은 이상 여행지에서 기억이 오래 남는 것은 '사람'이라는 거다. 멋있는 건물, 맛있는 음식, 흥미로운 역사, 다 좋지만 그래도 역시 나에게 가장 깊게 마음에 남는 건 그 도시에서 만났던 사람이다. 만났던 사람들이 보통은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루마니아를 많이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루마니아 하면 먼저 생각나는 건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팻일 거다. 팻을 만나 이런 팻이 자란 도시와 나라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실제로 사람들은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 특히 현지인들은 이렇게 지적 호기심의 촉발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호기심이 생기기 전에 내 마음을 끄는 무언가를 그들에게서 먼저 발견할 수 있어야 하더라. 항상 웃는 얼굴에, 나와 같은 나이지만 속이 깊고, 나 같은 낯선 이에게 이만큼의 친절을 베풀 만큼 착하며,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친구. 팻을 통해 나는 나를, 불확실한 내 미래를, 남들을 좀 더 사랑하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