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진 Nov 18. 2021

내일 나의 업무가 바뀐다면...

업무의 전환이란 자신이 목표로 하는 커리어의 길목에 있는 업무를 맡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회사가 필요한 자리에 공백이 생기면 누군가는 그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계획했던 방향과 다르더라도 말이다. 


상품을 개발하는 부서라고 단순히 상품만 개발하는 것은 아니다. 보험을 판매한 후에 얻을 수 있는 데이터를 가공하여 위험률 개발에 필요한 기초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경영진의 의사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들을 산출하는 업무도 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상품 부서의 주축이라 생각하는 상품개발 업무를 맡고 있었다. 내가 맡은 업무가 나에게 적합하며 다른 사람이 나를 대체할 수 없다고 자만했었다. 하지만 회사와 관리자 입장에서 나 하나쯤은 어디든 옮길 수 있었다. 해오던 업무를 2년을 못 채운 채로 업무 전환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렸다. 특정 업무를 맡고 있던 부서 내 그룹에 퇴직과 인사이동으로 공백이 생김에 따라 그 업무를 내가 맡게 된 것이었다.


인사이동 하루 전, 데이터 관련 그룹으로 이전함과 동시에 업무가 변경될 것임을 통보를 받았다. 부서를 떠난 이전 부서원의 업무를 맡는 걸로 말이다. 그 당시엔 억울함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해당 업무의 불합리함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부서를 이동한 동료 직원의 빈자리에 들어간 것도 모자라 면담 등 일체의 상의도 없이 업무와 그룹이 바뀌었다. 난 그저 힘든 일 시키면 꾸역꾸역 할 사람으로 보였다고 생각했다. 당시 심정이 복잡했다.


당연히 하루아침에 업무를 바꿀 순 없다. 이전 담당자와 이후 담당자 간 인수인계의 시간이 주어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전 담당자만큼 업무를 수월하게 해내기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 시간 동안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업무 내용뿐만 아니라 일하는 방식, 함께 일하는 동료, 사용하는 프로그램 등 거의 대부분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인수인계의 시간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모든 내용이 새로웠던 나에게 적응하기에 시간은 부족했다. 바로 실전이었고 부딪치며 배워야 했다.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일을 꾸역꾸역 하는 것이 정말 싫다. 주도적으로 일을 하지 못해서였다. 그럴 때면 하나하나 해낸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당장 급한 불을 끈다 하더라도 불이 왜 발생했는지 알지 못하면 같은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없다. 지엽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기 보단 큰 흐름을 파악했고 당장 붙은 불을 끄면서 원인을 찾으려 최대한 노력했다.


한 달, 두 달, 그렇게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을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해왔다. 돌이켜보니 값진 경험이었고 결과적으로도 나에게 발전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상품개발만 한다면 모를 통계 관련 지식들을 알 수 있었고, 내 부서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업무 영역을 가지게 되었다. 적응하는 데까지 힘들었지만 주변 동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습득하고 자리 잡아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업무 이전 초반, 모든 것이 새로웠고 막막했다. 그 당시엔 내가 해온 일들을 두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두려워할 것이 아니었다. 변화란 내 지지기반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앞에 쌓고 있는 벽을 허물고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분명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의지에 상관없이 업무가 변경되었다고 불평만 한채 나에게 놓인 상황을 타개하려 하지 않는다면 변화된 주변 환경에 맞춰갈 수 없다. 내가 해온 업무가 있고 나를 대체할 수 없다고 자만해서도 안된다. 내가 지금 맡고 있는 것이 잔잔해질 때, 당장 내일 어떠한 변화가 오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변화를 위한 준비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