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을 수 있을까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와 용서의 문제
* 표지사진 출처: Encyclopædia Britannica (출처 링크)
* 축약버전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습니다.(링크)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와 용서의 문제
용서는 진정한 사죄를 전제로 한다. 진정한 사죄는 죄의 인정과 고백을 넘어 그 죄로 인해 파생된 부정의를 되돌려 놓는 구체적인 행동을 수반해야 한다.
남아공은 가장 최근까지 제도화된 인종차별을 경험한 나라이다. 1948년 국민당의 집권 이후 약 45년간 지속된 인종분리 정책은 남아공 비백인 인구의 자유와 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였다. 끈질긴 투쟁 끝에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만델라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과거사 청산이었다. 만델라는 대통령 당선 이듬해인 1995년, '국가통합과 화해 증진법'에 서명하고 이에 기초하여 데스먼드 투투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화해위원회 (이하 진화위)'를 발족하였다.
진화위의 목적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인종차별과 인권침해 범죄의 진상을 밝히는 것, 둘째는 적절한 보상을 통해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것, 셋째는 진실을 공개한 가해자를 사면하는 것이다. '인권침해조사위원회', '보상과명예회복위원회', '사면위원회'의 세가지 소위원회는 각각 1960년부터 94년까지 일어난 살인, 납치, 고문, 학대 등 "중대한 인권침해" 사례를 피해자/가해자로부터 수집하고 보상 범위를 정하였으며 사면 여부를 심사하였다. 2000명 이상의 피해자와 유가족 등이 참석하여 피해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한 공개 청문회는 전국으로 생중계되었으며, 이외에도 21,000명 이상의 증인들로부터 받은 진술들이 보고서에 기록되었다. 또한 약 7000명의 사면 신청 가해자 중 1500명 정도가 사면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진화위가 보복적 정의 (retributive justice) 보다 회복적 정의 (restorative justice)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공개하고도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면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진실을 밝혀 피해자가 회복되는 것이 진화위 활동의 궁극적 목표였던 것이다. 이는 백인 엘리트들이 여전히 사회, 경제적으로 권력을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 신생 흑인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사면을 약속하지 않으면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쳐버릴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고려 이외에도 남아프리카 고유의 문화, 우분투 (Ubuntu, 인간다움을 뜻하는 줄루어) 정신이 과거사 청산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우분투 문화에서는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관용과 화해의 정신에 기초하여 해결한다. 가해자가 공개적으로 죄를 인정하면 그 자체로 이미 "수치심"이라는 처벌을 받았다고 판단하고 공동체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촉구한다. 진실을 대가로 사면을 제공하는 진화위의 회복적 정의는 우분투 정신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때 피해자가 피해 사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는 분배적 정의 (distributive justice) 역시 회복적 정의의 실현을 보조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진실의 완전한 공개, 보상과 명예회복, 사면을 통해 과거사 청산을 시도한 진화위의 활동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진상을 규명하고 공인력 있는 기록을 남김으로써 피해자들의 정신적 회복을 도울 뿐 아니라 똑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억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진실을 공개한 가해자들을 사면함으로써 사회통합의 기초를 마련했다. 진화위에서 정립된 회복적 정의의 개념은 이후 남아공 법치주의의 기초가 되었는데, 개인의 권리보다 공동체의 건설을 우선시하며 재판보다 조정과 중재를 통한 분쟁해결을 권장하는 등의 전통이 세워졌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화위가 가진 한계도 뚜렷하다. 보복적 정의를 원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진화위의 진상규명과 사면이 개인적인 인권침해 범죄에만 초점이 맞춰졌다고 비판을 받아왔다. 사면을 신청한 가해자의 대부분은 경찰이나 군 관계자 중 인권침해 범죄에 직접 가담한 사람들이거나 흑인해방 운동가 중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이었다. 전체 사면자 중 흑인 비율이 80%에 달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정작 백인 기득권층의 참여는 저조했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참여한 일부 백인들도 말단 행동대원들에 불과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토지 몰수, 강제 이주, 무리한 인종 구분, 기본권 박탈 등 비백인 인구들을 향한 폭력적인 제도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거시적인 차원의 "중대한 인권침해"는 인종분리 정책을 디자인한 주요 권력기구 책임자들에 의해 발생했다. 진화위 역시 이를 인지하고 기업, 언론, 종교계, 법조계 등을 대상으로 별도의 청문회를 개최하였으나, 이에 대한 백인 기득권 층의 호응은 미비했고 이들을 처벌할 근거도 실행력도 부족했다. 오히려 백인기득권층의 일부는 아프리카민족회의 (ANC)와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권력층의 핵심부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였다.
실제로 구조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는 민주화 이후에도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고, 인종분리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사회 곳곳에서 관찰된다. 백인 지역과 흑인 지역이 나뉘어 있고 부는 백인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내가 사는 웨스턴 케이프 지역만 해도 큰 농장이나 사업체의 소유주는 대부분 백인이며, 이들은 유럽에 뒤지지 않는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집세나 물가 수준은 내가 예전에 공부하던 영국에 비해 결코 낮은 편이 아닌데 기득권층 백인들의 수입은 생활비를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백인들 밑에서 일하는 흑인이나 컬러드 (혼혈인종의 통칭)들은 월 3000랜드 (한화 24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으며*, 그나마도 일자리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2베드룸 집 기준 백인지역의 집세는 10000랜드를 넘어가니 대부분의 비백인 인구들은 이 곳에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주로 도시 외곽에 위치한 타운쉽 (남아공 빈민촌)에 정부가 지어준 집에 살며 얼마 안 되는 월급과 정부지원금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저축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파르트헤이트가 공식적으로 종식된 지 25년이 넘어가지만 구조적으로 고착된 인종간 분리는 여전히 남아공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인종 분리는 부의 격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백인들은 자기들만의 경계를 지어놓고 흑인을 열등한 시민, 혹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로 인식한다. "툴라툴라"라는 베스트셀러 동화를 쓴 백인 작가가 몇 해 전 "남아공문학상"의 수상자로 지정되었다가 인종차별 발언으로 수상이 취소된 사례가 있었다. 그녀는 그의 이웃이 한 흑인에 의해 살해된 사건을 언급하며 "나는 흑인이 싫다. 난 그들을 두려워하며 그들을 피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기사 참조). 심각한 인종차별과 혐오표현임이 분명한데, 문제는 많은 백인들이 이 발언을 지지하며 남아공문학상 상금에 상당하는 후원금을 모아 그 작가에게 전달하였다는 것이다. 백인과 흑인/컬러드들의 진정한 사회통합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화위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우분투 정신에 따른 공동체적 정의의 실현은 반쪽짜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이 곳의 많은 흑인들은 아직 백인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진화위에서 사면의 조건은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지속되는 인종분리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백인들은 아직 남아공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급진적인 흑인운동가들은 토지소유권의 강제이전, 누진적 세제 개혁, 주거 이전의 보장, 경제 권력구조의 변혁 없이는 진정한 사회통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 실현 방법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남아프리카의 우분투 정신이 모든 인종을 포괄하게 되기 전까지 아파르트헤이트의 상흔은 치유되지 않고, 가해자들은 진정한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사죄는 반드시 잘못을 바로잡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진화위의 활동은 개인차원에서 정의를 세워가려 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구조적인 범죄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도외시했다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불완전한 사죄는 용서와 망각을 불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자세히 다루진 못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도 이런 예가 얼마나 많은가. 멀게는 일본군 위안부가 있고 가깝게는 세월호가 있다. 여전히 역사왜곡이 만연한 상태에서 합의문 한장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다. 사고원인이 정확히 밝혀지고 참사를 불러온 잘못된 관행들이 고쳐지지 않는 한 세월호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다. 진정한 용서는 잘못의 원인이 제거될 때에만 가능하다.
* 주: 지난 2월 남아공 정부는 월 3500랜드의 최저임금을 지정하였으나 현장에서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참고문헌
장원석 (2017),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와 회복적 정의론", 정치와 평론 21, 115-143
Forster, D. A. (2018). Translation and a politics of forgiveness in South Africa? What black Christians believe, and white Christians do not seem to understand. Stellenbosch Theological Journal, 4(2), 7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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