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편
졸업식 참석차 영국에 잠시 다녀왔다. 공부할 때는 잘 몰랐는데, 남아공에 몇 달 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역시 선진국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2017년 기준 영국 1인당 국민총소득(GNI per capita, PPP)이 약 4만 4천 달러, 남아공은 1만 3천 달러니 소득부터 4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그러나 소득 차이가 전부는 아니다. 영국과 남아공을 세가지 부분 (1. 안전, 2. 물가, 3. 육아)에서 간략히 비교해봤다. 오늘은 그 첫번째, 안전이다.
(주의. 제목은 영국 vs 남아공인데 사실 런던과 케이프타운 근교를 비교한 것.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음.)
일단 영국이 남아공과 훨씬 더 안전하다. 남아공에서 밤에 돌아다니는 건 생각도 못 하고 낮에도 역시 주위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영국은 주로 관광지에 있는 소매치기와 아주 가끔 터지는 테러가 문제였지 낮이든 밤이든 돌아다니면서 심각한 위협을 느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치안의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영국 온 첫날 런던아이 근처 공원에 가서 감격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공원이 있다니. 그것도 곳곳에. 해 좋은 날 아무 걱정없이 잔디밭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인다.
남아공이 자연도 좋고 날씨도 좋다지만, 자연도 날씨도 안전하게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갈 수 있는 곳은 보통 차로 가야 하는 거리에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사설 와인농장들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공원 (公園, public park)은 남아공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있어도 맘 놓고 가기가 어렵다. 안전 탓이다.
대중교통도 마찬가지이다. 남아공에서는 버스와 기차를 타본 적이 없다. 버스는 아예 없고 기차는 현지인들도 위험하다고 잘 안 탄다. 주로 자가용으로 다닌다. 현지인들 중 차가 없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은 보통 택시라고 불리는 미니버스이다. 들은바에 의하면 이 택시는 택시조합이라 불리는 갱단 몇개에 의해 운행되며 루트 등을 정할 때 택시기사들 간 상해, 살인이 일어날 정도로 갈등이 격해진다고 한다. 그렇게 정해진 루트 안에서 꽤 높은 가격을 받고 택시를 운행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남아공 저소득층은 소득의 35퍼센트를 교통비로 쓴다고 한다. 월급이 150만원인 사람이 50만원을 대중교통비로 쓰는 셈이니 어마어마한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특히 런던은 대중교통이 정말 잘 되어있다. 교통비가 비싸다곤 하지만 승용차 유지비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다. 통근거리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중교통비가 소득의 5% 이상 차지하지는 경우는 드물 것 같다. 기차든 버스든 남아공 같은 위험은 전혀 느낄 수 없다. 한가지 흠이라면 연착이 너무 잦다는 것. 특히 기차는 제 시간에 안오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안전과 연관되어 있다. 기차 노선 중 단 하나라도 화재, 사고 등 문제가 생기면 그 노선과 연결된 모든 노선을 멈춰 세우고 위험요소가 다 사라졌을 때 운행을 재개한다. 안전의식은 정말 철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흔히 범죄의 비용으로 범죄를 예방하는데 드는 돈 (담장, 경비, 알람 등), 범죄로 인한 직접적 피해 (도난당한 물건, 신체적 상해 등), 범죄에 대응하는 노력 (경찰, 법원 등) 세가지를 든다. 하지만 범죄는 사회구성원 간의 신뢰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원이나 대중교통의 예에서 보았듯, 공공서비스의 발전은 이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