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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Oct 10. 2020

광복절 광화문 집회는 얼마나 위험했나

자유와 안전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며

“집단행동이 이뤄지는 집회에서 길게는 반나절에 걸쳐 빈틈없이 수칙이 준수돼 코로나 19의 위험이 조절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 하다”

      - 법원의 집회금지 처분 집행정지 기각 사유 중


 사실 광화문 집회의 가장 큰 문제는 '집회' 자체아니었다. 집회의 주최자와 참가자 중 다수가 코로나를 과소평가하고 방역조치를 고의로 어기려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나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완화정책을 주장하면서도 트럼프 류의 "코로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장에 공감하지 못한다. 실제로 트럼프 류의 주장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다면, 고령의 트럼프는 철저히 보호돼야 할 고위험군이며 확진 3일 만에 퇴원한 후 마스크 없이 나다녀서는 됐다.


 광화문 집회에 모이는 사람들 중 고령 비율이 높다는 점도 이들이 코로나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거기다 주최자들이 줄줄이 코로나에 걸린 걸 보면 방역지침을 무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집회 이후 급증한 확진자 수. 단, 8월 12-18일에 이미 증가하고 있었음.


검사수를 조절하여 확진자 수를 늘린다는 음모론은 사실이 아님. 양성비율이 같이 증가.


 

 지난 광복절 정부 방역지침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집결했기 때문에 실제 우리 방역체계에도 부담이 있었다. 모임의 규모(3만 6천 명), 참석자 거주지(전국 각지), 참석자 명단 관리 실태(없음) 등 광복절 집회의 특성은 3T 모델(검사-추적/격리-치료)의 적용을 매우 어렵게 한다. 검사와 격리에 협조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n차 감염과 경로 미상 감염 사례도 늘어났다.


광화문 집회 전후로 급증한 확진자 수, 검사 대비 확진 비율, 중증환자 수, 전국으로 퍼진 집회 참가자, 거기에 2.5단계 상승으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고통까지 생각하면 집회 전면 금지 조치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여기까지가 조금 뻔한 얘기고, 이제부터는 직관에서 조금 벗어난다.


 그렇게 제멋대로 행동한 사람들이 많아서 (방역체계에 대한 부담과 별개로) 실제 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냐, 데이터를 보면 그렇지 않다. 각종 우울한 전망들은 대부분 틀렸다.


출처: 질병관리청 자료 저자 재구성


 위 표를 보면 10월 8일 현재까지 전체 누적 확진자는 2만 4천여 명, 사망자는 427명이다. 이중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 발 확진이 시작된 8월 13일 이후 확진자는 9762명, 사망자 122명이다.


 중증환자가 늘어서 사망자도 늘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사망률이 높지 않다(코로나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광복절 이후 확진자 대비 사망률은 1.2%, 확진과 사망 사이 시차를 고려해 수치를 조정해도 1.3%이다. 이는 전체 누적 사망률 1.8%보다 현저히 낮고 지난 2-4월 신천지 발 감염 확산 때(2.1%)의 절반에 불과하다.


 고령 중증환자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률은 줄어든 것은 언뜻 이해가 안 된다. 지난 2월보다 더 적극적으로 검사하여(검사 수 2-4월 평균 8832건 < 8-10월 평균 12669건) 감염자에게 신속한 치료를 제공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난 6개월 간 중환자 치료 역량을 개선해 적체가 줄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혹은 variolation 등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어쨌든 우리는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


 그리고 반전은 또 있다. '코로나 사기'를 외치며 광화문에 모여 비말을 주고받은 사람들 사이 감염 확산은 예상외로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8월 13일부터 지금까지 확진자 만여 명 중 감염 경로가 광화문 집회(n차 감염 포함)로 지목된 사람은 총 647명, 비율로 보면 6.6%에 불과하다. 감염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던 한 달여를 생각해도 일 평균 20명 미만이 광화문 집회를 매개로 감염되었다(당시 일평균 확진자 수는 약 250명).


 여기에 광화문 집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랑제일교회 발 확진자(1174명)는 전체 확진자의 12%다. 한 교회에서 전체 감염의 10% 이상이 나온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검사 대비 양성률이다. 검사자의 약 20%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에 반해 광화문 집회의 양성률은 (647+@) 명/36,000명으로 대충 2-2.5%가량으로 추정된다. 현재 전체 누적 양성률 1%보다 높지만 '음모론자'들의 '코로나 파티'치곤 양성률이 매우 낮다.


 똑같이 방역 지침을 우습게 안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야외에서 열린 광복절 집회와 종교모임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즉, 감염이 매개로서 집회의 파급력을 과대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킨 민주노총 집회의 경우 약 1천900명 중 감염자가 단 한 명이었는데 그마저도 외부에서 걸린 사람이었다(집회 참가자 중 감염자가 있었는데 확산이 안되었다는 얘기). 의사 파업 때 역시 집회 관련 확진자는 0이다.




 이쯤 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눈치채셨을 거다. 방역을 이유로 집회를 원천 차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손 씻기 등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는데 야외 집회는 더더욱 그렇다.


 약자의 숨통이었던 거리와 광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면 몰라도, 집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그 유익과 (감염 위험 포함) 비용을 진지하게 비교해 보시길 부탁드린다. 나는 저 '위험한' 무리들이 모여있어도 야외 집회의 위험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통한 감염 확산과 방역체계 과부하가 걱정된다면, 집회를 차단하는 대신 안전한 집회를 하는 방안을 고안하면 된다. 마스크 착용-거리두기를 의무화하고, 대규모 집회의 경우 구역을 50-100명 단위로 나눠 참석자 명단을 관리하면 된다. 이동 시 전세버스를 이용하는 경우에도 참가자가 흩어지지 않게 관리하게 하고, 식사 등 집회 외 모임은 금지 혹은 관리 가능한 소그룹으로 하게 하면 혹시 확진자가 나와도 부담이 적다. 고령자나 환자는 되도록 참석하지 말도록 권고하고 참가하더라도 각별히 보호하면 된다. 그래도 걸리면, 그땐 치료비를 부담시키던지 구상권을 청구하던지 본인이 책임지게 하면 된다.


 의지만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광화문에 모인 무리들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광장은 공동체의 안위에 '심각한 위협'을 주지 않는 이상 닫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적어도 광장에서만큼은, 그렇게 '심각한 위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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