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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Feb 16. 2021

곳간을 채우기 위한 재정지출

유럽 주요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황 및 2021년 경제회복 전망


연구원에서 보고서를 하나 더 썼습니다. [유럽 주요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황 및 2021년 경제회복 전망]. 15페이지짜리 짧은 현안 보고서입니다.


 그중 두번째 장은 국제기구에서 전망한 2021년 경제회복 추이를 담았습니다. 브런치 독자님들과 같이 고민해보고 싶은 점이 있어 아래 몇가지 정리해보았습니다. 의견도 환영합니다.




1. 2020년 vs 2021년


 유럽 주요국 경제는 2020년 최악의 역성장을 경험했다. 독일 -5%, 프랑스 -8.3%, 이탈리아 -8.8%, 스페인 -11%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안 좋은 성적이다. 유로존 평균 연간 경제성장률은 -6.4%로 2009년 유럽 재정위기 때의 수치(-4.5%)를 밑돌며, 이번 피해는 유럽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다만 2020년 4/4분기 실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그림 참고). 작년 초보다 더 심한 재확산에 2, 3차 봉쇄까지 겹쳐 꽤 큰 타격을 예상했는데, 막상 까보니 전기대비 성장률 평균 -0.7% 정도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2/4분기엔 -12%였음). 오히려 독일, 스페인은 각각 0.1%, 0.4% 소폭이나마 플러스 성장, 경제기구들의 암울한 전망에 비해선 선방한 편이다.


 재확산에도 불구하고 경제 피해가 크지 않은 이유는 생산시설을 그대로 열어두는 등 봉쇄 강도(혹은 시민들의 순응 정도)가 유행 초기에 비해 약했고 온라인쇼핑 위주로 변화된 시장환경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어느 정도 적응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선 11월 민간소비가 오히려 증가하기도 했다. 백신 접종 개시로 인한 소비심리 개선도 한몫했다(그래서 감염은 못 잡았지만...).


 또 중요한 요인이 정부의 재정지출이다. 재확산이 시작되자 유럽 정부는 재빠르게 소상공인, 실업자, 임금 감소 노동자 등을 지원하며 소비의 급격한 감소를 저지했다. 얼마 전 공유한 표에도 나왔듯 대규모의 재정 지출 및 금융 지원이 있었고 경기를 일정 정도 떠받치는 효과를 보였다.


  4/4분기의 경제 피해 최소화 경험은 2021년 전망도 밝게 한다. 백신과 치료제를 통한 예방 및 치료 역량 강화, 감염병 대응책의 비용 효율성 증가(a.k.a 정밀 방역),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적응 등등 낙관할 만한 요소들이 여럿 있다. 여기에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재정 지출이 더해지면 유로존 국가들은 2021년 동안 평균 3.6~4.2% 정도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워낙 피해의 폭이 컸기 때문에 대유행 이전 수준으로의 회복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변이 바이러스 출현은 대표적인 리스크고, 생산 지연과 백신 기피로 인해 접종 속도가 안 나는 점, 백신의 불균형 배분으로 인한 글로벌 가치사슬 회복이 둔화되는 점도 경제 회복을 위해 선결해야 하는 과제들이다.




 2. 곳간을 채우기 위한 재정지출


 위기 대응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무작정 돈을 쓰면 '재정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게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반론이다. 우리나라 국가채무 수준이 낮은 편이긴 해도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예상되는 가파른 나랏빚 증가세는 분명 걱정거리다.


 하지만 재정건전성은 쓰는 것(지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경제부총리 말대로 "재정이 화수분이 아닌" 이유는 들어온 만큼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 관련 논의엔 '채우는 부분(수입)'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재정수입의 대부분은 세금에서 나오며, 세금은 기업과 노동자와 소비자들의 경제활동에서 나온다.


 우리도 그렇지만 세계경제는 지난해부터 재난의 불평등한 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변화에 적응한 업종과 고숙련노동자는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한편, 소상공인, 비정규직, 저임금 서비스업 종사자, 여성노동자, 구직자 등은 안 그래도 어려운데 더더욱 어려운 최악의 한해를 보냈다. 코로나19에 집중하는 동안 보건과 교육의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원이 적절히 배분되지 않았다.


 이런 불평등한 피해는 단순히 개개인에 피해를 끼칠 뿐 아니라 전체 경제구조를 허약하게 만들고 경제성장 동력을 훼손한다. 자영업자들이 도산하면 임대업자들도 금융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실업이 지속되면 구직자들이 근로의욕을 잃게 된다. 아픈 사람이 제대로 치료를 못 받으면 노동생산성이 저하된다. 아이들이 교육을 못 받으면 향후 경제 성장을 위한 인적자본이 사라진다. 그 결과는, 알다시피 경제 전체의 붕괴와 그로 인한 세수 저하다.


 지금 그 위기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재정이 아깝다고 지금 아끼면, 나중에 더 큰 피해를 보고 더이상 쓸 돈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IMF와 OECD가 연말연초에 낸 보고서는 한목소리로 말한다. 지금 나랏빚 걱정 말고 더 쓰라고. 특히 잠재 성장률을 올리고 참여형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더 두텁게 하라고 강조한다. 그게 '쓰는 것' 이상으로 곳간을 '채워서' 장단기적으로 재정적자를 줄이는 길이다.




3. 방역은 방역전문가가, 경제는 경제전문가가?


그리고 재정 지출은 곧 효과적인 방역 대응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문건에 '방역은 보건당국에서 잘하고 있으니 우리(경제연구소)는 경제대책 마련에 집중하자'라는 글귀가 쓰여있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미 여러 차례 말했지만 방역과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 된다. 자영업자, 실업자, 노숙인, 이주민 등에 대한 생계지원 및 손실보상은 거리두기 정책에 대한 순응도를 올리기 때문에 곧 방역 대책이기도 하다. 또한 코로나19 대응 의료진 및 방역 관련 공무원 보강과 지원, 의료시설 및 중환자 설비 확충, 백신 및 치료제 구입 및 개발 등 보건 분야에서도 재정지출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방역의 효율 및 지속가능성을 최대한 올릴 수 있다.


 우리나라 재정지출이 여타 국가에 비해 전체적으로 적은데 그중 보건 관련 지출은 GDP 대비 0.25%로 거의 최하위다. 액수로 보면 4조원이 넘어서 큰돈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원이 더뎠을 때의 피해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예컨대 우리가 만일 유럽 수준의 역성장을 보였다면 1년 새 70조 원가량이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비교적 잘해왔지만, 보건 관련 지출을 조금만 더 늘리면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도를 낮출 수 있고 그에 따른 경제적 혜택이 비용을 능가할 게 자명하다.


IMF가 발간한 국가별 GDP대비 재정지출 규모. 한국은 46개국 중 38위.


 방역에 따르느라 발생한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는 점은 더 강조할 필요가 있나 싶다. 지원을 해야 협조를 하고 먹고살만해야 집에 머물 수 있다. 지원을 해줘야 학교를 닫았을 때 일을 줄이고 아기를 돌볼 수 있다. 취약 시설에 지원을 늘려야 밀집도를 낮추고 감염 위험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에 협조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가 주어진다는 신호를 보내야 '사회적 신뢰'라는 자산을 유지할 수 있다. 위기가 이번이 끝은 아닐 것이다. 이번에 적절한 보상이 없으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번 위기에,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다음 위기에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잃게 된다. 이미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더 늦어선 안 된다.  


 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시민들의 협조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는 정부가 응답할 때다. 단기적으로 보상책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 자율과 책임의 원칙 하에 지속가능한 방역이 실현되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자원배분을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풀어도 우리 체계가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보건과 경제부문 피해에 취약한 사람들을 충분히 돌봐주겠다고 약속해야 신뢰가 유지될 수 있다.


 결국 결론을 뒷감당 그만 생각하고 돈 좀 쓰라는 말이다. 자잘하게 아플 때 치료하면 금방 나을 것을 돈 아깝다고 버티면 큰 병이 된다. 그때는 집 팔고 땅 팔아도 못 고친다. 더 늦기 전에 돈 좀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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