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스스로 '경제학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오랜 기간 경제학을 배우고 가르쳤던 지라 기본적인 사고는 주로 그 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제가 하는 얘기들도 대부분 띄엄띄엄 배운 경제학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데, 오늘은 그중 '백신 접종'이라는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경제학 이론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1. 수요-공급의 법칙
경제학은 '희소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 수요-공급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 그림의 수요곡선(파란 선)은 소비자가, 공급 곡선(빨간 선)은 생산자가 거래의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고 결정하는 행위의 총합입니다. 시장이 여러 조건을 만족할 경우,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생산/소비가 일어납니다.
이를 백신 접종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수요 측면을 먼저 보면, 소비자(접종 대상자)는 백신 접종의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고 접종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여기서 접종의 '비용'은 기본적으로 백신의 가격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접종센터로 이동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있고, 접종 전후로 휴가를 내면 또 그에 따른 기회비용이 발생합니다. 낮은 확률이지만 부작용의 위험이 있습니다. 바늘공포증이 있거나 목수정 작가의 팬인 사람은 접종의 심리적 비용도 상당히 클 것입니다.
이에 반한 접종의 '편익'은 감염 위험의 감소입니다. 나이가 많거나 기저질환이 있어서 코로나19의 위험이 크다면 감염 예방의 효용도 크게 느낍니다. 반면 젊은 층일수록 꼭 백신을 맞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낄 수 있습니다. 접종자의 편익에는 가까운 사람을 전염으로부터 보호하는 부분도 포함됩니다. 이기적인 인간이라지만 부모, 배우자, 자녀, 동료 등에 감염을 전파하고도 행복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동거인 중 감염에 취약한 사람이 있거나 의료인, 요양병원 종사자 등 필수인력인 경우 접종의 편익이 증가합니다.
접종의 편익과 비용은 위험 회피 성향이나 수집한 정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러 정보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모은 결과 편익이 비용을 뛰어넘는 사람은 접종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개개인의 결정이 모여 그림의 수요곡선이 만들어지며, 주어진 가격이 낮을수록 접종 의향이 커지기 때문에 수요곡선은 우하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공급은 생산자가 결정합니다. 제약회사들이 백신 판매로 인해 얻는 이익이 개발 및 생산의 비용을 뛰어넘으면 시장에 백신을 공급하게 됩니다. 백신의 가격이 높을수록 제약회사들이 더 높은 (한계)생산비용을 감당할 수 있고, 따라서 공급곡선은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곳에서 가격과 생산량/접종량이 결정됩니다. 시장이 몇가지 조건을 만족한다면, 이 가격과 접종량은 희소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균형점이 됩니다.
2. 외부효과로 인한 시장실패
하지만 현실의 시장은 종종 그 조건을 만족하지 않고 결국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발생합니다. 시장이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외부효과(externality)입니다.
외부효과는 개인이 계산하는 편익과 비용이 실제 사회가 감당하는 편익과 비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합니다. 시장에서 이뤄지는 개인 간의 거래는 의도하지 않게 제 3자에 대한 반사이익 또는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제 3자에 대한 반사이익은 긍정적 외부효과, 손해는 부정적 외부효과라 부릅니다.
바로 백신 접종의 예로 넘어가면, 백신 접종은 개인에게 감염 예방의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감염 통제 확률을 높이는 유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타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이익을 백퍼센트 개인의 이익으로 편입시키지 않습니다. 울타리 안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고작일 것입니다. 여기서 개인적 편익(위 그림의 빨간선)과 사회적 편익(위 그림의 파란선)의 차이, 곧 (긍정적인) 외부효과가 생깁니다.
수요 부문에 긍정적 외부효과가 있는 경우, 자유시장에서 균형 접종량은 사회적 최적 접종량에 못 미치게 됩니다. 즉,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이 배분되도록 충분히 많은 사람이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과소소비' 현상이 발생합니다. 특히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점에서 사회적 편익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외부효과의 크기가 커지고(파란선의 낙타 혹 부분), 시장 균형과 최적 균형 사이의 간격도 커집니다.
개인의 자유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면 자원배분의 비효율을 교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적정한 수준의 정부개입이 필요합니다.
3.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법
경제학은 외부효과를 교정하는 방법을 몇가지 제시합니다. 아마도 가장 효과가 확실한 방법은 강제 접종일 것입니다. 사회적 최적 수준의 접종량을 달성할 때까지 접종 거부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고 그래도 거부할 경우 징역을 살게 하면 자원 배분의 비효율 문제는 바로 사라집니다.
하지만 민주사회에서 공권력을 사용해 접종을 강제해서는 안 되겠죠. 대신 여러 긍정적, 부정적 인센티브로 외부효과를 내부화(internalise)하는 대안을 쓸 수 있습니다. 즉, 울타리 밖 사람들의 문제를 울타리 안의 문제, 곧 내 문제로 만드는 것입니다.
긍정적 외부효과의 경우 접종자에게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미 정부에서 진행 중인 무료접종도 그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등에서 시행 중인 '그린 패스(거리두기 면제권)'나 유럽 여러나라에서 발급 또는 발급 계획 중인 백신 여권 등도 접종의 개인적 편익을 높이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영국 같은 경우 백신 접종자에게 구직을 더 용이하게 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접종 거부시 가장 후순위로 접종 순서를 미룬다던가, 거부자에 한해 무료 접종을 유료로 바꾼다던가 하는 부정적 인센티브도 생각해볼 수 있는 옵션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허위정보 유포를 통제하여 심리적 비용을 낮추고, 접종자를 격려하고 거부자에게 압박을 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외부효과의 내부화에 해당합니다.
물론 각각의 방법에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문제가 됩니다. 여행이나 다중이용시설 출입을 위해 백신 접종 또는 건강 상태라는 개인정보를 업주 또는 당국에 제공할 때 오남용의 우려는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부작용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소위 '안티백서'라는 낙인을 찍고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도 이상적이라 볼 수 없습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만 사회의 정식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신호 역시 위험합니다. 백신에 대한 정보가 적어 미처 접종하지 못한 취약계층이 더 소외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개인이 접종의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듯, 정부도 개입의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여 가장 효율적인 대안을 선택해야 합니다. 개입의 비용에는 앞서 말한 윤리적인 문제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4. 우리 목표는 무엇인가.
여기서 개입의 편익은 결국 우리 사회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도 집단면역을 달성해 유행을 통제하겠다는 합의가 이뤄지면 부작용을 감수하고 좀 더 강압적인 방법을 쓰는 게 허용됩니다. 유행 통제보다 우리 사회가 지켜온 인권이나 자유, 다양성 등이 더 중요하다면 비효율을 감수하고 개입을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후자를 선택한다 해도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은 대부분 접종을 받기 때문에 중환자 수나 사망자 수는 어느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대신 '종식'이나 '집단면역' 등은 요원해지고, 확진자 증가와 그에 연동된 각종 피해는 그대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증으로 발전이 안되니 독감처럼 취급하고 살자, 이런 새로운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경제학 이론으로 선택에 따른 자원 배분의 결과는 설명할 수 있지만, 개인 또는 사회의 가치판단에 대한 기준까지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백신 접종의 목표는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가치를 더 중요시 여기는지는 공론장에서의 의견 교환을 통해 합의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의 '정답'이나 '상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태도는 위험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자유롭되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되 윤리의 문제도 도외시하지 않는 공론이 이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