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는 사랑

Covid-19 in 남아공, 세번째 이야기

by Young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 요한일서 4:18


1.


남아공에도 빠른 속도로 감염자가 늘고 있다. 3월 23일 현재 확진자는 총 402명, 오늘만 128명의 감염자가 새로 확인되었다. 아직까지 사망자는 없지만 회복된 사람도 없는 확산 초기 단계이다.

여기도 1주일 전부터 선제적 통제 조치들을 시행하더니 오늘은 급기야 lockdown을 발표했다. 목요일부터 3주간은 꼼짝없이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요 며칠 수업도 세미나도 다 취소되고 꽤 단순한 삶을 살았다. 일도 안 하면서 월급만 받는 게 미안해서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평소엔 그냥 지나치던 걸인 분들께 얼마간 emergency cash를 쥐어주었다. 그러면서 몇마디 나눠보면 대부분 바이러스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위생 수칙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철저해서 동양인인 나와 얘기하면서 입을 가리기도 했다. 여기 감염자는 모두 유럽에 다녀온 사람들인데... 그냥 그러려니 했다.



2.


역시 제일 걸리는 건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작은 공간에 여러 명이 모이는 선교지 교회는 전염병 전파에 취약하다. 그래서 지난주를 끝으로 당분간 모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좁은 예배당을 나와 야외에 널찍이 떨어져 앉아 마지막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Covid-19 예방법과 위생수칙, 의심증상 발생 시 대처요령 등을 알려주었다. 손 자주 씻어라, 열이나 기침이 나면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아라, 의사에게 전화하고 검사받아라 등등 얘기를 하면서도 마음이 저려왔다.


손세정제나 비누를 살 돈이 없는 가정도 많다. 대부분 집에 물 공급이 충분치 않고 우리가 구제 사업을 하는 Squatter camps에는 수십 가구가 공동 수도 하나를 공유한다. 환절기가 다가오며 벌써 코를 훌쩍이는 친구들이 하나둘 생기는데, 많은 식구가 한집에 몰려 사는 구조에서 자가 격리를 할 수나 있을까 싶다. 공공의료는 이미 포화상태인데 검사나 치료는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확진자 대부분이 유럽여행을 할 만큼 여유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이런 마을에 들어올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단, 도심에 나가서 식당 종업원, 가정부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옮아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다른 지역에 실제 그런 예가 있어 긴장이 된다.



3.


사실 요새 살짝 심통이 났었다. Covid-19가 새로운 질병이고 세계 곳곳에 빠른 속도로 퍼져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이해하는데 정부와 시장이 이렇게까지 반응할 정도의 일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기 선교지에서는 전염병과의 싸움이 일상이다. 지난 세 달간 Covid-19에 감염된 사람은 35만 명, 사망한 사람은 약 15,000명인 반면 같은 기간 결핵에 감염된 사람은 약 250만 명, 그중 5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세 달간 아프리카에서만 14만 명이 넘게 결핵으로 죽고 그중 2만 명 이상은 아이들이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안에서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지만 타운십이나 빈민가는 여전히 감염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결핵, HIV, 인플루엔자와 다른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죽는 사람이 1년에 9만 명 가까이 된다. 이런 질환들은 Covid-19와 다르게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의 목숨도 빼앗아 간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왜 유독 Covid-19만 주목을 받을까. 질병의 확산보다 뉴스의 확산이 사안을 과장하는 것 같다. Covid-19가 단지 새로워서 주목받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수십 년 간 새로운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등장했지만 이 정도 관심을 받은 적도, 고강도 통제 정책이 시행된 적도 없다.


Covid-19가 주목받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감염의 피해가 선진국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면서 먼 나라의 사망자까지 한 사람 두 사람 세며 보도하는 언론들이 저개발 국가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은 왜 꼼꼼히 카운트하지 않았을까. 각국 정부들은 왜 지금 쏟아붓는 만큼의 자원을 기존 질병 퇴치에 투입하지 않았을까.

더 치명적인 전염병을 이미 가까이 두고 사는 내 입장에선 Covid-19에만 쏟아지는 관심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4.


나는 이 선교지에 들어올 때마다 감염의 위험을 생각한다. 여기 사람들의 위생에 대한 관념은 우리와 다르다. 질병뿐 아니라 벼룩이나 진드기를 옮겨오는 것도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하지만 감염이 두려워서 여기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려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똑같이 손잡아주고, 안아주고,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물이 부족해서 잘 안 씻는 아이들,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아이들도 예외 없다.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옷을 빨지언정 선교지에서는 여느 친구들과 관계 맺듯 똑같이 대한다.


혹시라도 질병이 옮는다면? 그러면 그냥 옮는 거다. 필요한 치료를 받으면 된다. 아픈 것도 죽는 것도 삶의 일부 아닌가. 질병이 두려워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단하는 것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일이다.


나는 이 팬데믹 시대의 진짜 영웅들, 의료진과 방역 관계자 분들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질병의 영향을 과장하고 과잉 대응을 요구하는 것에 전혀 유감이 없다. 보건역량을 뛰어넘는 수의 환자가 발생하면 안 되니까, 할 수 있는 한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하니까, 이해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과잉 대응의 그늘에 대해 생각한다. 서로를 감염원으로 보고, 본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확진자를 비난하고,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어 각자도생의 개인주의만 남는 상황을 경계한다. 이미 위기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걸 우려한자.


전문가의 권고에 따라 개인위생에 철저히 신경 쓰는 한편, 질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중단해버리지 않았나 돌아보면 좋겠다. 코로나 19는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멀게 할 뿐 마음과 마음을 가깝게 하는 데에는 전혀 장해가 되지 않는다.


두려움으로 인한 고립과 사랑에서 나오는 연대 중 어느 것이 더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될까?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후자라 답할 것이다.


대구로 달려온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자기는 괜찮다며 마스크를 나누는 사람들, 자가격리자들에게 도시락과 생필품을 보내는 사람들, 어려운 시기에 더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지갑을 여는 사람들, 괜찮냐고 서로 먼저 안부를 묻는 사람들... 두려움을 이기고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껏 우리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를 구원하는 건 분명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이다.



덧. 아래 사진은 마지막 모임에 나온 선교지 아이들. 비누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우리의 작은 사랑이 이들을 질병으로부터 지켜주길 바라며.




첫번째 이야기: http://www.facebook.com/youngook.jang.5/posts/2619844778113317

두번째 이야기: https://www.facebook.com/youngook.jang.5/posts/2692238804207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