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에서 팬데믹(pandemic)을 맞이하는 법

여기도 확진자가 늘고 있다

by Young


1.

요새 남아공 날씨가 참 좋다. 40도를 웃돌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작년 경험 상 가을이 시작하는 이맘때가 제일 지내기 좋았던 것 같다. 언제나처럼 깨끗한 하늘과 따스한 햇살, 나무와 풀이 만들어내는 향기에 길을 걷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사진으로는 이 분위기를 전할 수가 없어 아쉽다.



2.

남아공에도 Covid-19 확진자가 생겼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남아공 사람이 첫번째 환자가 됐는데, 불과 며칠 새 13명으로 늘어났다. 대부분 이탈리아에 같이 다녀온 사람이거나 그 가족이다. 전염성이 높긴 높나 보다.

오늘은 내가 사는 지역 근처에도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이 나왔다. 우리나라 소식에 걱정만 했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이제 내 옆으로 왔다.

연구실을 같이 쓰는 미국 친구가 손소독제와 물티슈를 잔뜩 사 왔다. 무슨 뉴스를 들었는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손 잘 씻고 사람들이랑 거리 유지하면 괜찮을 거라고, 우린 젊고 건강한 편이니 큰 위험은 없을 거라고 안심시켜주었다.

오후 쉬는 시간에 또 바이러스 얘기가 나왔다. 한 프랑스 친구가 굉장히 걱정하며 우리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 친구는 자기 파트너 가족이 이번에 봉쇄된 이탈리아 북부에 살아서 염려가 큰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국의 사망률이 이탈리아에 비해 굉장히 낮은 걸 신기해했다 (이탈리아 11일 현재 사망률 6.6%, 우리나라 0.77%).

웹사이트를 검색해서 십 만건이 넘는 우리나라 검사 건수를 보여주았다. 경증환자와 의심환자를 다 검사해서 확진 건수가 많은 편이고 아마 한국 자료가 제일 정확할 거라고 덧붙였다. 옆에 듣고 있던 미국 친구는 너가 그래서 안심하는구나, 트럼프는 아무것도 안 해줘서 불안하다며 불평했다.

친구들에게 우리나라 정부가 비교적 투명하게 잘 관리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한국이 잘 못하는 부분은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우리끼리만 알면 되니까.



3.

사실 제일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는 곳은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들이다. 백인 거주 지역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저소득층이 사는 타운십이나 빈민가는 전염병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이다. 인구밀도는 매우 높고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손을 자주 씻는 게 불가능하다.

이미 결핵이나 HIV-AIDS 등 전염병이 만연해 있는 데다가 공공의료 역시 수준이 낮다. 이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한번 번지기 시작하면 관리가 어려울 것이다. 지난겨울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던 남아공 친구는 좀 더 심해지면 자긴 고향에 돌아가서 아무도 안 만나고 아무것도 안 할 거라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정보의 불균형도 심각하다. 학교에 나와 있는 사람들만 해도 코로나19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고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선교지에 있는 친구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지금 사는 삶이 팍팍한데 먼 나라에 일어나는 질병 뉴스까지 다 챙겨볼 수 있을까. 다른 전염병을 비롯해서 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한 위험을 매일 맞닥뜨리니 치사율도 낮은 이 질병이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을 게다.

하지만 대비가 안 되어있을수록 전염병의 유행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제발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마을까진 오지 않길 기도한다.



4.

WHO가 pandemic을 선언했다. 전세계 주요 국가에 확진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걸 보며 여러 생각이 든다. 이 나라들엔 “무능한 친중 정권”도 없고 신천지도 없다. 애초에 확산을 막기 어려운 병이었다. 지리적 기후적 조건이나 면역 체계 등을 이유로 운 좋게 비껴간 나라들이 있을 뿐 이 전파력 높고 영리한 바이러스를 피하기는 불가능했다.

이제부턴 발생한 환자를 얼마나 잘 관리하는지가 관건이다. 거기서 각 나라의 보건 및 방역 당국과 시민의식의 수준이 드러날 것이다. 어떻게 완벽하겠냐마는, 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방역 당국의 비교적 투명한 정보공개, 의료진과 공무원들의 헌신, 시민들의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와 절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양보하는 성숙한 문화가 돋보인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우리 수준이 더 분명히 드러나는 걸 느꼈다.

우리나라에 확진자 수가 점점 줄고 있다 해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집단감염 사례는 계속 나올 것이고 앞으론 중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의 감염원 유입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동시에 지난 몇 달간 입은 피해를 어떻게 복구할지도 신속히 논의해야 한다.

할 일이 쌓여있지만, 지금까지 잘 해왔듯 앞으로도 잘할 거라 믿는다. 아무리 세월이 험하고 선거를 앞두고 있어도 공통의 위기 앞에서는 좀 힘을 합치면 좋겠다. 세상물정 모르는 연구자의 순진한 망상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