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연구자로 유명한 에마뉴엘 사에즈(Emmanel Saez) 교수가 최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경제학자들이 분명 현대사회의 승자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월급도 많이 받고, 지적 엘리트 대접도 받지요. 우리에게 세상은 그 자체로 꽤 잘 돌아가는 편인데, 그게 우리가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그래서 더 넓은 경제 혹은 우리와 다른 종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상황을 오해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가지게 됐을 수도 있고요.
I certainly think that economists belong to the happy class of the winners of these modern times. We are very well paid. We are part of the intellectual elite. For us, the world as it is works pretty well, and I think it influences the way we think about the system. Our economic models make sense for people like us. That probably contributes to creating a bias or at least a blindness to the situation of the broader economy and large fractions of the population."
세상이 돌아가는 걸 책상에 앉아서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맞을까?"
월급을 많이 받는 지적 엘리트는 아니지만, 안락한 공간에 살며 끼니 걱정 안 하는 내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포괄하는 전체 경제를 정확히 알고 분석할 수 있을까 염려하는 것은 사에즈 교수와 동일하다.
이론과 통계 너머 인간의 삶을 더 가까이 보고 느끼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항상 있어왔던 거 같다. 특히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 주로 소외되고 가난하고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를 삶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남아공까지 와서 선교지에 들어가는 건, 일차로 종교적 신념의 영향이지만, 경제사 연구자로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동기의 발로이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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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돌아온 후부터 부스터(Worcester) 지역에 있는 한 교회에 들어가고 있다. 이전까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탐방만 하다가 이 곳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며 필요한 일을 돕기로 결정하였다.
이 교회는 지금까지 다녀 본 선교지 중에 가장 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페이스북에도 한번 소개한 적이 있다. 뼛속까지 선교사인 친구 동훈이가, 자기 도움이 제일 많이 필요한 곳으로 가고 싶다며 사역지를 여기로 정해서 나도 같이 따라다니기로 했다.
이번에 다시 가보니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전에 사용하던 가건물 주인이 임대료를 너무 많이 올려서 새로운 곳을 찾아야 했다. 빌려놓은 정부 땅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릴 상황이었다가, 다행히 어떤 분이 빌려 주신 교회 건물에서 임시로 모일 수 있게 되었다. 지난번 건물보다 더 작아서 오래는 못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몇주째 꾸준히 들어가서 학생들과 얘기 나누고 가정에도 방문하면서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에 대해서 많이 보고 있다. 책으로 봤던 것보다 더 비참하고, 더 절망적이다. 가난과 가정폭력과 성폭력과 기회의 박탈에 몸서리치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도 한 친구가 어떤 문제로 교회를 떠났다.
하지만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교회에 나온 학생들은 또래 여느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장난치며 밝게 웃는다. 온 지 얼마 안 된 나를 어색해하지 않고 질문에 스스럼없이 답한다. 장래희망을 말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가족들과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다들 저마다의 아픔을 속에 담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도 그러저러 삶은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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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세상을 보고자 한 나의 목적은 남아공에 있는 남은 기간 동안 어느 정도 달성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들이 직면하는 고통은, 내가 공감하지 못할 뿐 아니라 쉽게 해결해줄 수도 없다. 더 잘 알게 되는 만큼 무력감도 커진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게 소망 없는 이 세상인 걸.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 연구가 올바른 방향을 잡고, 아주 더디게라도 이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 변화가 아주 천천히 일어나는 동안에는, 와서 옆에 있어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내가 찾은 삶의 의미를 알려주고, 가끔 먹을 거도 나눠주면, 그러면 되지 않을까.
오늘도 사역지에 다녀와서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