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은 왜 자꾸 사라지는가?

마흔, 나를 돌아보는 시스템의 탄생

by ISTJ

나는 이제 막 육아휴직을 시작한, 마흔 살의 엄마다. 세상은 내게 말한다. "이제야말로 너 자신을 위한 시간을 찾아!"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내 시간은 아이들의 밥과 잠, 놀이와 학습에 촘촘히 엮여 있다. 나는 거울 속의 내가 낯설었다. 회사에서는 분명 무언가를 해내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나는 그저 시간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나는 나 자신을 가장 먼저 방치했던 것 같다. 피곤에 절은 밤, 유일한 자유라며 유튜브를 켜고 SNS를 뒤적였다. 텅 빈 나를 채우려는 헛된 시도였다. 그 대가는 다음 날의 무서운 피로와 짜증이었다. 거북목이 되고, 아무거나 먹어치우는 습관이 들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내 몸과 마음을 외면했다. 내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운동을 해도 제대로 된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았다. 동작을 따라 하기에 급급했을 뿐, '왜 이 동작이 되지 않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은 이미 오래전에 잊었다. 내가 무시하고 눈감는다고 해서 문제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텅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허둥대다 정작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시간을 관리하는 건, 결국 나를 관리하는 일이라는 것을. 자유라는 넓은 틀 안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나만의 단단한 시스템이 필요했다. 그 시스템의 첫 번째 벽돌은 바로 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밤 10시에 잠드는 '자기 전의 나'와 이별을 선언했다. 처음엔 '이 시간이 내 유일한 자유인데!'라는 상실감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뒤, 아침 5시에 눈이 번쩍 뜨이는 상쾌함을 경험하며 알게 되었다. 밤의 헛된 자유가 아닌, 아침의 고요한 20분이 나에게 진정한 '심리적 독립'을 선물한다는 것을. 그 시간은 커피 한 잔을 온전히 느끼고, 멍하니 창밖을 보며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완벽한 효율이 아닌, 온전한 순간을 향하여

나를 돌보기 시작하자, 두 번째 고민이 찾아왔다. 7살과 4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삶은 '집중'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면서 설거지를 하고, 전화를 받으며 빨래를 넌다. 나는 이 효율적인 동선 속에서 내가 점점 '정신이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한 가지 일에 깊이 몰입하는 '딥 워크'는 사치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이 개념을 엄마의 일상에 맞게 재해석하기로 했다.


나는 타이머를 25분으로 맞추고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랑 딱 25분만 놀자. 그 시간에는 핸드폰도,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엄마는 너만 볼 거야." 신기하게도, 25분간의 '깊은 놀이'는 아이의 만족도를 높였고, 나는 내가 '진정한 엄마'로서 존재한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멀티태스킹으로 여러 일을 조금씩 하는 것보다, 한 가지 일에 온전히 몰입하는 경험은 내 마음의 밀도를 높여주었다. '뽀모도로 학습법'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라, 그저 '온전히 함께하는 25분'이라는 약속이었다.


시스템은 통제가 아닌, 나를 향한 이해였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나만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다. 매일의 계획은 무너졌고, 의욕은 쉽게 꺾였다. 전날 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다음 날의 계획을 세우는 작은 습관부터 시작했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오전 10시, 스트레칭하기', '오후 2시, 잠시 혼자 커피 마시기'와 같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작은 계획들은 다음 날을 살아갈 나에게 예측 가능성과 안정감을 선물했다.


그리고 나는 시간의 사용을 틈만 나면 기록했다. 처음엔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할까?'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기록을 이어가며 깨달았다. 아이들의 낮잠을 위해 흔들어 재운 30분,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함께 웃어준 15분. 이런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사실은 내가 엄마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시간이었음을. 내 무의식의 시간들이 눈에 보이자, 나는 나 자신에게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마흔의 육아휴직은 내게 시간 관리의 기술이 아닌, 삶의 철학을 가르쳐주었다. 시간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로 '지금 여기'를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완벽한 시간관리가 아니라, 불완전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여정이었다.


100만 구독자를 향한 거창한 글은 아니지만, 이 글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완벽한 시간'이 아닌 '온전한 나'를 찾는 여정의 작은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25분간의 깊은 커피 타임을 즐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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