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崔致遠)과 쌍여분(雙女墳) 스토리
1편: 당나라 유학 길 ■
2편: 두 자매의 무덤(雙女墳)
괴나리봇짐을 맨 치원(致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 최견일(崔肩逸)의 얼굴에는 애처로움과 대견함이 가득했다.
월출산(月出山)에서 내려다 보이는 a상대포 (上臺浦)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짐을 내리고 싣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린다. 당시 국제항구였던 상대포(上臺浦) 항구 에는 치원(致遠)이 타고 갈 당나라행 배도 있었다.
상대포(上臺浦) 항구 gpt제공
"바르게 살아라. 겸손하게 행동해야 하느니라. 다른 학생이 백 번을 읽을 때, 너는 천 번을 읽고 써라(人百己千). 그리고 명심하거라. 네가 10년 안에 벼슬에 오르지 못하면 이 아비는 너를 보지 않으리라."
열두 살 어린 아들 치원(致遠)이에게는 냉혹하리만큼 지엄한 아버지의 분부였다.
치원(致遠)이 탄 상선(商船)은 상대포를 출발하여 영산강 하구를 빠져나와 비금도, 우이도를 거쳐 흑산도에 도착해서, 긴 항해를 위해 물과 식량을 싣고 다시 홍도로 갔다. 홍도의 대풍리(大風里)는 중국으로 가기 위한 배들이 큰 바람을 기다리는 포구였다.
아버지 최견일(崔肩逸)의 우려와 기대를 뒤로하고 열두 살의 어린 치원(致遠)은 산동성의 등주(登州)에 도착했다.
새로운 문물과 학문에 대한 열망으로 당시 당(唐) 나라의 수도인 b장안(長安)으로 향하는 치원(致遠)의 가슴에는 오로지 학문에 대한 성취욕과 신라인의 자부심으로 가득했으리라.
당시 장안(長安)에는 타국(他國)에서 온 8천여 명의 c숙위학생(宿衛學生)들이 유학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당부한 "인백기천(人百己千)"의 일념으로 치원(致遠)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눈물 나게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치원(致遠)이 18세가 되던 해에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d빈공과(賓貢科)에 장원급제를 하였다. 소위 수석합격을 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약조(約條)했던 10년 보다 4년이나 조기에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약관(弱冠)도 되기 전인 18세에 보통 합격도 아닌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한 치원(致遠) 을 당(唐) 나라 조정(朝廷)에서도 주목하게 된다.
그가 19세가 되던 해에 치원(致遠)은 율수현위(溧水縣尉)로 임명되었다. 율수현(溧水縣)은 강소성(江蘇省) 남경 (南京)에서 남쪽으로 백여 km 떨어져 있다. 현위(縣尉)는 현령(縣令)의 보좌관으로 19세 외국인에게는 꽤 높은 직위라 했다.
최치원(崔致遠) 유상(遺像) 중국문헌
치원(致遠)이 어린 나이에 홀로 외국에서 힘든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읊었던 한 수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치원(致遠)이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이 아릿한 애수(哀愁)를 느끼게 한다.
秋風惟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가을바람 아픈 마음에 시를 읖는다
세상길에 내 마음 아는 이 없구나
창 밖 깊은 밤에 비는 내리고
등불 앞 내 마음은 만리 밖 고향 생각
(글쓴이 譯)
註)
a상대포(上臺浦) 전남 영암 구림마을
부근으로 당시 국제항
b장안(長安) 현 중국 서안(西安)
c숙위학생(宿衛學生) 유학생
d빈공과(賓貢科)외국인에게 주는 과거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