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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Sep 27. 2022

'돈벌이로서의 일'

그림을 그리다


인생 어느 때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 교통비밖에 나오지 않는 경찰 활동(회복적 경찰 대화모임 진행자)은 이제껏 했던 일 몽땅 털어 제일 재미있고 의미 있다. 경찰에 의뢰된 다양한 가, 피해자들을 만나 각자 입장에서 충분히 이야기하도록 돕고 둘이 얼굴을 보고 대화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하도록 지원하는 활동이다.

돈도 되지 않는 이 일이 왜 이렇게 재미있고 행복한지 신기하다. 돈벌이로서의 일이 아니니 몸과 마음이 가볍다. 사람들 말을 잘 들으려면 뭘 더 배워야 하는 게 아니라 비워야 한다. 선입견을 버려야 하고, 판단을 내려놓아야 하고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채워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삶의 방향이 비워야 상대 입장을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달라졌다. 돈이 목적인 일이 아니니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줄어들어 덜 애쓰고 살 수 있다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지난한 상담 과목을 이수해야 전문자격을 얻을  있는 전문 심리 상담사가 아니어도  일을   있다. 상대 입장에 대한 공감, 다양한 삶의 경험들 속에 판단 없이 머물러 들어줄  있다면 누구나   있는 일이다. 중년 들어 일을 확장할  있는 분야가 바로 상담 일이다. 요즘은 사이버대학 상담 관련 학과 경쟁률도  세다고 한다. 상담 공부에 한번 발을 들이면  천은 들여야 공부를 마칠  있다고 한다. 상담을 공부로 하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공감은 공부로 배울  있는  아니다.



50대 중반을 지나면서 '돈벌이로서의 일'이 주는 긴장감에서 편안해지고 싶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자격을 얻기 위해 계속 돈을 지불하고 자격증을 따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두렵고 불안한 건 그런 나 자신을 내가 인정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돈벌이가 아닌 '에서 재미와 기쁨을 느낄  있었던   삶에  선물이다. 기쁨이 주는 행복, 풍요로움을 느낄  으미까. 돈이 되는 일을 해야한다고 길들여진 나에게 '돈벌이가 아닌 '에서 느낀 기쁨은  벌고 덜먹어도 행복할  있다는 경험을 했다. 이후 그리기 시작한 풍경 스케치는  자신과 친구가 되어 노는 즐거움을 느낄  있었다. 혼자 노는 쁨은 나이들기 전에 꼭 익혀야 한다. 한동안 혼자 놀이에 취해 좋아하는 넷플릭스 영화도 끊고 그리기에 열중했다. 사람들에 의지하던 마음도 줄어들었다. 삶의 기쁨이 나에게서 창조되기 시작하면서 관계에  에너지를 쓰게 됐다.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도 조금 줄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불안도 옅어진 듯하다.


내 무의식은 만족하지 못 한다. 늘 뭔가 되어야하고 해야한다고 재촉한다. 독자에게  리는 글을 쓰는 작가도 못된다. 더 늦기 전에 전문자격증이라도 따야 한다고 부추긴다. 뭔가 더 근사한 일에 도전하라고 말한다. 행복하게 산다 해도 ‘일하는 전문인으로서의 정체성’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웃는다.  삶은 행복해졌지만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에 실패했다'라는 무의식적 생각이 있다.

우연히 아로마향으로 감정분석을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삶에 모든 면에서 준비가 되어 있지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라는 심리 분석을 들었다. 순간 수치심, 실패감이 훅하고 껴졌다. ‘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의식은 아니었구나' 당황스러웠다. 이후 그날 수치심과 실패감에 대해 계속 생각해봤다. 나이 들어도 '돈벌이로서의 '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일하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이 없이는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그래서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는구나.



'서든 에이지, 마흔 이후' 내용이다. '일에 대한 현대적 의미는 사실 인위적인 것이다. 진정한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해 왔다. 여기서 말하는 일이 보수를 받는 일로 한정된 것은 고작 100년 밖에 되지 않는다. 노동력의 의미가 그런 식으로 좁게 한정됨으로써 모든 것이 바뀌어 왔고 심지어 우리의 개인적 정체성에도 변화가 왔다. 따라서 집 바깥에 있는 직장과 보수를 받는 일이 고용의 기준이 되었다. 그 결과, 삶에서 뜻깊은 의미와 높은 가치를 지닌 진정한 일들이 격하되거나 소홀히 취급되었다.'

나의 삶은 내가 하는 , 수입 그걸 뒷받침해  전문자격이  사람의 정체성을 말해준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내가 느낀 수치심과 실패감은 일의 개념을 직업 혹은 수입에 한정해 판단한 결과이다. 내가 나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건 문제이다.

인생 어느 때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음에도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깊은 고민 끝에  무의식에 쌓여있는 일에 대한 좁은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확연히 깨달았다. 무의식에 쌓여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자라면서 사회적으로, 학교에서, 부모님에게서, 혹은 책을 통해 형성된 일에 대한 개념이라 여겨져서다. 일의 개념이 이렇다면 죽을 때까지  버는 일을 해야 행복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게  것이며 '돈벌이로서의 ' 죽을 때까지 놓을  .  개인의 긍정적인 정체성의 일환으로 보다 의미 있는 일의 개념을 회복하고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일의 개념을 직업에 국한하는 것은 평생에 걸친 자신의 성장을 뒷받침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 나에게 숙제가 남는다. 여전히 '돈벌이로서의 ' 해야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무의식적인 생각을 깨야 한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가두고 반쪽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내가 내 삶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이며 중요한 시각의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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