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
'시는 온전하게 몰입할 때 온다. 시에 투자하는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몰입하는 시간의 깊이가 중요하다. 단 한 시간이라도 시에 집중적으로 몰입해보라. 당신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열정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있을지도 모른다.’ 안도현 시인의 명문장들을 한승훈 사진작가 사진과 함께 소개한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동안 바깥 활동이 많아져 '1일 1 그림 그리기'에 손을 놓고 있던 날이다. 바빠 다른 데 신경 쓸 틈이 없이 할 일을 만족스럽게 잘하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만족감은 다르다.어떻게 다른가 하면... 바쁘다가 잠시 짬이 생기면 심심하다. 가만히 홀로 있는 시간이 휑하게 느껴진다. 심심함을 채우기 위해 친구를 만나거나 일을 더 만들어하게 된다. 만족감, 뿌듯함이 오래 가지 않는다. 쉽게 배부르고 빨리 배가 꺼지는 영양가 없는 음식을 먹었을 때 느끼는 허기 같다. 은근하게 배부른 포만감이 하루 종일 이어지는 음식과 달리 많이 먹을수록 입에 계속 당기고 배고픈 인스턴트 음식을 먹은것 같다.
손놓았던 그림 그리기를 다시 잡으려니 생경하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마음은 있지만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날 도서관에 들렀다. 평소 읽고 싶은 책을 사진 캡처해 두거나 페북에 올린 서평을 읽고 제목을 적어 놓았다가 시간 날 때 빌려 읽는다. 예전에는 글쓰기, 쓰고 싶은 책 주제와 관련된 책을 주로 읽었다. 책을 빌려 첫 번은 그냥 눈으로 읽는다.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을 때 포스트잇으로 표시해 둔다. 두 번째는 컴퓨터 메모장에 눈여겨 둔 구절을 옮겨 저장한다. 이렇게 해두면 일용할 양식을 쟁여둔 뿌듯함이 생긴다. 이렇게 두 번 읽으면서 읽은 책을 기록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풍경스케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나서 책 고르는 습관이 달라졌다. 핸드폰 사진첩에 저장한 책 제목을 검색해 찾지만 책을 빌리지 않는다. 서가 번호를 찾아 손에 닿는 대로 마음에 꽂히는 대로 고른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책의 느낌으로 책과 만난다. 계획과 의도를 내려놓고 눈길과 손이 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책을 고르는 일이 훨씬 재미있다. '고백, 안도현의 문장들'이란 책도 이렇게 만났다. 책을 읽는 동안 몸의 느낌이 열리면서 막혔던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사진과 안도현 시인의 글이 가슴을 콩닥콩닥 울린다. 잔잔하고 따뜻한 감동이 전해지면서 원래 돌아와야 할 안식처로 돌아온 안도감이 생기는 순간이다. 고요하게 주의를 내려놓고 땅으로 스며드는 시간을 가지자 다시 일상의 풍경이 다시 들리고 보이기 시작한다. 그림 그리기를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함께 풍경스케치를 했던 지인에게 작품전시회 초대를 받았다. 내가 참여했던 그 강좌 다음 기수의 작품 전시회였다. 나처럼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사람들도 자신의 그림을 엽서로 제작하고 수채화 채색을 한 그림을 액자에 넣어 전시했다고 한다. 직접 가서 전시회 감상을 하고 나니 참여자들 모두 얼마나 뿌듯했을까 감동이 전해졌다. 부럽기도 했다. 혼자 즐겁게 그린다고 끄적거렸지만 그림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느낌이 올라온다.
축하의 의미로 차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지인이 나에게 말했다. "카톡 프로필에 올린 그림들 보면서 열심히 그리고 있는 거 봤어요. 옆에 있으면 훈수 두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참았어요. 색이 탁하고 검은 회색 사용이 많아요. 좋은 종이를 써야 그림이 좋아져요."
작품 전시회를 다녀온 날 카톡 프로필에 올렸던 그림을 내리고 인스타에 올린 그림도 내렸다. 그러고 보니 '1일 1 그림 그리기'에 손을 놓은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그제서야 알아진다. 누가 뭐라든 꿋꿋하게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겠지만 분명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평가는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카톡 프로필에 사진을 올린 게 잘못이야' 비난이 떠오름과 동시에 그림 초보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력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나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이래서 '아티스트 웨이(줄리아 카메론)'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격려와 지지를 줄 수 있는 사람과 자신의 재능을 비난하는 사람을 구분해서 자신이 원하는 격려를 줄 사람을 가까이하라고 강조한다. '그림 그리기'에서는 누구의 충고도 가르침도 판단도 받고 싶지 않다. 그냥 혼자 즐길 수 있는 고유한 영역으로 두고 싶다. 그림 전시회가 실력을 높일 수 있다고들 하지만 전시회 출품에 대한 욕심이 1도 없다. 당분간 내 마음대로 해서 기쁘다면 그냥 아무 제약 없이 즐기고 싶다. 이제 알겠다. 자신의 온전한 기쁨을 세상에 내어놓길 거부한 순수한 아티스트들이 훨씬 많았을 거라는 것을. 결과가 아닌 과정의 기쁨을 알게 되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자신을 위한 기쁨 이외에 다른 목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삶의 기쁨 자체가 목적이다. 달리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그렇게 살아도 충분히 괜찮은데 오랫동안 망설였으며 많이 두려워했구나 싶어서 뭉클하다. 잘 그린 그림, 못 그린 그림 그게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