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밤머리에 남는 책

by 빛담

며칠 전, 대학교 동창들과 오랜만에 모임이 있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던 자리에서 한 친구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야, 너 예전에 썼던 〈일상의 빛과 그림자〉 있잖아.
그거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는다. 사진도 너무 좋고, 글도 따뜻해서 힐링돼.”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그 책은 사실, 내가 그다지 자신 있던 책이 아니었다. 브런치에 올렸던 글과 사진을 묶은,
기획도 없고 방향성도 없던, 그야말로 ‘정리된 일기’ 정도였다.
완성도를 높이려 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 꼭 읽어주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이걸 누가 사서 볼까?” 하는 회의적인 마음으로 내놓은 책이었다.

그런데 그 책을 머리맡에 두고 ‘위로를 받는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잘 팔리고, 평가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내게는 너무나 큰 감동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자랑을 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스타벅스 구석자리에 앉아,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친구가 그러는 거야. 내 책을 머리맡에 두고 읽는대. 너무 고맙지 않나?”

그러자 아내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잠시만, 교토도 좋지만 일상의 빛과 그림자도 너의 진짜 모습이 담겨 있잖아. AI의 도움 없이, 거칠지만 그대로의 문장들로 써 내려간 책. 그게 오히려 너다워서 좋았던 거 아닐까? 충분히 자신 있어도 돼. 잘 썼어.”

그 말에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다.
그 책은 어쩌면 완벽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진심이었던 것 같다. 문장도 거칠고 표현도 매끄럽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그때 느꼈던 그대로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걸 친구이자 독자로서 느낀점을 내게 이야기 해 주었다는 것이, 참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꼭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책 돈이 되냐? 돈도 안 되는 거 뭐하러 그렇게 고생해?”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책은 잘 팔리지 않고, 수익이 큰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마 한 번도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본 적이 없는 사람일 거다.
자신의 생각을 콘텐츠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고, 그걸 누군가가 평가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

내 책을 사 준 그 친구는 무료로 책을 받은 게 아니라, 돈을 주고 내 이야기를 샀다.
그건 단순히 거래가 아니라, 시간을 건 신뢰였다. 그는 내 이야기를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 시간 반쯤을 기꺼이 할애해 주었고, 그 시간을 모두 지나고 난 뒤에 “힐링이 됐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 한 문장이면, 나는 이미 작가라 불리어도 괜찮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원래는 북페어 기회가 생긴다면, 〈잠시만, 교토〉만 가져가려 했다. ‘이게 나의 첫 번째 진짜 책이다’라고 스스로 규정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일상의 빛과 그림자〉 역시 내 이야기이고, 내 흔적이다. 비록 정교하진 않아도, 거기엔 ‘가장 솔직한 나’가 있다.

이제는 결과나 판매량이 전부가 아니다. 나를 알든 모르든 간에, 내 사진과 문장에 귀 기울여주는 단 한 명의 독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창작은 결국 그런 게 아닐까.
돈이 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조용히 남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일.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일상의 빛과 그림자〉는 누가 볼까 싶어 내놓았던 책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내 진심이 처음 닿은 책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글을 조금 더 믿기로 했다.”


- 구매 링크: 일상의 빛과 그림자: 빛담의 포토에세이 : 동네서재 아롬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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