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없애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연습 중입니다.

by 빛담

마흔이 넘은 지금, 나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회사는 결코 안정적인 곳이 아니라는 걸.
그곳은 사람을 키우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사람을 교체한다.

나는 그걸, 회사에서가 아니라 주말의 부업으로 먼저 배웠다.


2년 전, 주말마다 웨딩스냅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엔 단순했다.
비싼 렌즈값이나 벌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업체에서 자꾸 연락이 오고, 나를 찾는 사람이 늘어가면서
‘나는 꽤 쓸모 있는 사람인가 보다’라는 착각이 생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일이 뚝 끊겼다.
누가 나를 평가한 것도,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그냥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순간’은 너무나 갑작스레 찾아온다는 걸.


그 경험이 남긴 상처는 오래갔다.
그건 단순히 일감이 줄어든 게 아니라,
존재의 이유가 흔들린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아마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아직 일하고 있는데, 이미 마음은 은퇴해버린 사람처럼.

그 뒤로 나는 부쩍 불안해졌다.
'일이 끊기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나를 대체할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그 세 가지는 내 ‘다음 인생’의 가능성이자, 피난처였다.

하지만 이내 또 현실적인 질문이 따라왔다.

일본어를 잘한다고 해서 일본에 펜션을 차릴 수 있을까?
글을 쓴다고 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사진을 잘 찍는다고 해서 누군가 나를 불러줄까?

대답은 늘 같다.
“그건 신도 모른다.”


그 불확실함이 무섭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IT 일을 한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한다.

누군가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너무 오래 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이제 마흔이 넘은 나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다.
기술은 빠르게 바뀌고, 그 속도를 따라잡으려는 의욕조차 점점 약해진다.

그렇다고 다 던져버릴 수도 없다. 지금의 삶이 아직은 막연한 ‘꿈’의 기반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요즘은 불안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불안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아무 의미 없는 10분, 아무 결실도 없는 하루, 누가 나를 찾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 시간,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엄격한 내가 봐도, 너는 정말 잘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쉬는 것도 결국, 나답게 ‘업무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억지로 멈추는 게 아니라, 내가 쉴 수 있는 리듬을 만들어 그 안에서조차 나답게 살아보려는 노력.

그게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가장 현실적인 배움의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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