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잃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마음 한쪽이 비어 있다.
그 비어 있는 자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채워야 한다는 생각조차 흐려질 만큼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단순히 ‘그저 지나가겠지’의 시기를 훌쩍 넘어선 지 오래다.
대화를 나눌 사람은 있지만, 진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함께 웃을 자리가 있고, 함께 사는 사람도 있는데,
이상하게 늘 혼자 있는 기분이다.
몸은 곁에 있지만 마음은 멀리 서 있는 듯하고,
눈앞의 일상은 분명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설다.
내가 여전히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그 세상과 조금씩 어긋나 있는 느낌.
그래서 나는 일본어를 배우고, 책을 읽고, 사진을 찍는다.
무언가로 잊어보려 애쓰지만, 시간은 외로움을 지워주지 않는다.
그저 조금씩, 그 무게에 익숙해지게 할 뿐이다.
마치 오래된 가구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지 못한 채,
그저 그 위에 또 하루를 쌓아 올리는 일처럼.
어쩌면 내 안의 문이 닫혀 있어서,
아무리 다가와도 닿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대화를 시작해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고,
함께 있어도 나만 동떨어진 듯한 이 기분.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다만 나의 세계가 조금 많이 닫혀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너무 오래 자신 안에 머물면,
그 고요함이 어느새 벽이 되어버린다는 걸 이제는 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그럴 이유도, 용기도 없다.
그래서 더 외롭다.
어디에도 기대지 못하는 외로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외로움이
조용히 나를 감싼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쓴다.
이야기할 사람은 없지만,
스스로에게 이야기할 마음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가끔은 이 글을 쓰는 손끝이,
나 자신을 다독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땐 잠시나마 내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외로움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해결될까.
누군가와 다시 티키타카가 통하면,
이 공허함이 조금은 줄어들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 또 다른 외로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채워지는 건
결핍이 아니라 ‘감정의 리듬’이다.
그 리듬이 잠시 맞을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내 안의 공백을 대신 채워줄 순 없다.
결국 외로움은 누군가의 온기로 덮이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대화로만 조금씩 가라앉는다.
새로운 사람은 나를 잊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다시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인가를
확인하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래도, 가끔은 생각한다.
어딘가에 내가 쌩뚱맞게 건넨 말에도
“그랬구나, 힘들었겠구나.”
“공감돼요, 뭐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그렇게 짧게라도 마음을 건네줄 사람이
정말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은 지금 내 옆에 있는데,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건 아닐까.
그런 상상이 문득 스쳐가면, 잠시나마 조금은 진정된 내 마음끝에서, 다시 한번 기분 좋은 감정이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럴리 없겠지. 결국은 그리 되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