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그 이가 너무 커서, 바람이 입 안으로 크게 들어온다는 거예요.”
오랜만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커피 한잔을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동안은 일 때문에, 혹은 각자의 일정 때문에 자주 마주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이 모여 잠시 여유를 부렸다.
동료들은 한결같이 지난주 일요일에 치렀던 일본어 능력시험 이야기를 꺼냈다.
“잘 봤어요?”, “결과는 언제 나와요?”
나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합격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이에요. 그런데 결과가 두 달이나 뒤에 나온다니, 그건 좀 화가 나요.”
평소 우리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아니라, 나에 대해 아는 게 ‘일본어 공부한다는 사람’ 정도일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동료가 말했다.
“진짜 간절히 공부하더라고요. 옆에서 봐도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 말을 듣자 순간 멈칫했다.
그 정도로 열심히 했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제 시험이 끝나서 좋긴 한데, 사실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하고 웃어 넘겼다.
티타임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오후, 오전엔 이슈 분석으로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엔 대화를 하느라 하루가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으니, 정말 막막했다.
그동안 리더로서 IT 업무 관련 공부를 너무 소홀히 한 건 아닐까 하는 자책감도 동시에 밀려들었다.
평소 같으면 일이 없을 때 일본어 문법이나 어휘를 외우며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렇게 나의 일상 대부분을 차지하던 ‘일본어 공부’가 사라지니, 회사에서 그 빈자리를 채울 무언가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 평소 일본어 모의고사를 풀러 가던 빌딩 26층의 사내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일본어 공부가 아닌, 그것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소설도 읽고 싶었고, 평소 좋아하던 자기계발서도 눈에 들어왔지만, 우선은 업무와 관련된 기술을 다시 다지고 싶었다.
프론트엔드 개발 관련 책 한 권, 그리고 챗GPT·캔바·코파일럿 등 AI Agent들의 개념과 활용법을 담은 책 한 권을 빌렸다.
자리에 돌아와 AI Agent 관련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점은,
‘최종 결과물을 먼저 정의한 뒤, 그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한 자동화 파이프라인을 설계한다’는 개념이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챗GPT 정도만 알고 있었지만,
‘이런 게 있구나’ 하고 머릿속에 개념을 하나쯤 넣어두면, 언젠가 분명히 써먹을 날이 오리라는 걸 알기에 기꺼이 시간을 들였다.
역시, 나는 놀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또 마냥 노는 것도 못하는 사람.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걸,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책을 덮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시대다.”
예전에는 글, 사진, 영상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하청’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콘텐츠 제공자가 가장 빛나는 자리로 올라섰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스레드 같은 플랫폼에서 꾸준히 쌓아온 사람들은
AI의 도움으로 디자인부터 기획, 마케팅까지 스스로 해내는 시대가 됐다.
나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나만의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그 두 가지를 엮어 ‘글귀사진’이라는 계정을 만들기로 했다.
운영 방식은 간단하다.
나는 사진과 글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챗GPT는 그 감정선에 맞게 문장을 다듬어준다.
그 결과물을 받아 미리캔버스에서 디자인해 완성한다.
오늘은 이렇게 세 편의 피드를 만들어 게시했다.
며칠 전 마케터의 영상을 보았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성장시키는 핵심은 ‘끈기’라고 했다.
6개월 동안, 매주 세 번 이상 꾸준히 피드를 올리는 사람만이 남는다고.
그래서 이번엔 해보려 한다.
결과가 어찌 되든, 꾸준히, 우직하게.
어떤 일이든 결국 일관성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가장 크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내가 만든 ‘글귀사진’ 콘텐츠들은
언젠가 또 다른 형태의 ‘사진 에세이’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일본어 시험은 좀 너무했다.
결과가 일주일 만에만 나왔어도 다시 공부를 이어갔을 텐데,
두 달 뒤라니, 그 사이 다 잊어버릴까 봐 걱정이다.
아날로그의 나라라 그런가, 괜히 아쉽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 시간 동안 나는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나의 손으로, 나의 시선으로 만들어가는 콘텐츠로
내 시간을 다채롭게 채워나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