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나를 끝까지 밀어붙여봤던 겨울

by 빛담

2025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12월 첫 번째 일요일.
올해 7월에 N2를 합격한 기세로, 드디어 일본어 능력시험 N1에 도전하는 날이었다.
시험이라면 늘 긴장을 달고 사는 내가, 이번만큼은 유난히 간절했다. 마지막까지 단어 하나라도 더 넣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시험장으로 향하는 순간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시험 장소는 내가 일하는 회사 바로 맞은편 중학교.
평소 회의실 창 너머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며 잠깐의 숨을 돌리곤 했던 곳이다.
익숙한 장소에서 치르는 시험이라 마음이 조금은 편할 줄 알았다. 그러나 고사장 앞에 놓인 수십 개의 긴장된 표정들—대부분 나보다 한참 어린 20대들 사이에 서 있는 순간, 나는 오히려 더 숨을 고르게 되었다.

교실엔 묘한 긴장과 활기가 뒤섞여 있었다.
연필이 시험지를 긁는 소리, 여기저기서 작게 터져 나오는 탄식.
나 역시 그 공기 속에서 지난 시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문제를 풀었다.
이 순간을 위해 내 지난 3개월이 흐르고 있었다.


올해 8월, JLPT N2 합격 소식을 확인했을 때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잘하는 무엇이 생겼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하루가 다 환해질 만큼 기뻤다.
공부라는 건, 때로는 성적 자체보다도 *‘나도 할 수 있었다’*는 감각이 더 큰 의미를 남긴다.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기로 했다.
원래는 내년 7월 시험을 목표로 천천히 가려 했으나, 결국 생각을 바꾸었다.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르는 게 인생이니, 지금의 안정된 회사 상황을 지렛대 삼아 올해 12월 시험을 끝판으로 삼기로 했다.

그날부터 내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9월부터 두 달 동안 회사가 끝나면 곧장 일본어 학원으로 향했고,
11일간의 교토 여행에서도 숙소에서나 장거리로 이동할때, 교재를 펴 단어를 외웠다.
학원에선 늘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 단어 시험만큼은 항상 1등이었다.

나는 문제를 틀리는 건 괜찮다 생각하지만, 단어를 모르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몰라서 못 푸는 건 이해할 수 있어도, 외우면 되는 것을 외우지 않는 건 스스로에게 이유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달의 학원 수강이 끝나고, 마지막 5주 동안은 회사 독서실에서 하루 최소 1시간, 길면 3시간씩 공부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나를 끝까지 미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빛담, 왜 이렇게 일본어를 열심히 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어느 날 동료가 물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끝까지 가보고 싶어서요.”

사실 그게 전부였다.
처음엔 단순한 취미였다.
어느 순간 ‘도전’이 되었고, 그다음엔 ‘증명’이 되었다.
마흔이라는 나이에서,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걸 내게 스스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시험이 다가올수록 모르는 것들은 끝이 없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독해, 끝없이 늘어나는 단어들.
모의고사 점수는 오르다 떨어지고, 떨어지다 멈췄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가보자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걸어왔다.

그 와중에 작은 위안이 되어준 건 ‘시험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이었다.
브이로그 카메라를 사서 영상 편집에 도전해보고 싶었고,
도서관에서 밀린 책들을 천천히 읽어보고 싶었다.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며 잊고 살았던 것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 지금, 이상하리만치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오늘만 그럴 것이다.
긴 시간 한 목표에 몰입했던 자리엔 언제나 이렇게 커다란 공허가 먼저 찾아온다.


결과는 내년 1월 말에 나온다.
정말 잘 봤으면 좋겠다.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지난 3개월간 나 스스로를 철창 없는 감옥에 넣고
그 시간을 버텨낸 경험은,
어떤 점수보다 오래 남을 거라는 것을.

두 해 가까이 이어온 일본어 공부.
그 끝에서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마흔의 도전은 결과가 아니라,
‘아직 배울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이번 겨울을 잘 견뎌냈다는 위로와 칭찬을 내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