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왜 약을 한 움큼씩 드시는지, 왜 아버지가 나에게 누워 있을 테니 위에 올라가서 발로 좀 밟아달라고 했는지.
그땐 아프지 않았고, 몸이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십여 년 전, 농구를 하다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그 사고 이후로 내 인생은 묘하게 방향을 틀었다.
활발히 몸을 쓰던 사람에서 이제는 시선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게 됐다. 그땐 그 변화가 하나의 전환일 뿐, 노화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눈이 쉽게 침침해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의미 없이 눈을 깜빡이게 된다. 방광은 예전 같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신호가 오면 바로 화장실을 찾아야 하고, 밤잠도 예전처럼 깊지 않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몸이 먼저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
우리 둘째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가끔 내가 너무 힘들어 누워 있으면 아이에게 일부러 말한다. 위에 올라가서 발로 좀 밟아줘. 그러면 신기하게도 몸 구석구석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그 순간, 갑자기 떠오른 장면이 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늘 누워 계시며 똑같은 부탁을 하던 모습.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안다. 아버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 나이가 되면 그렇게 살아야 했다는 걸.
군대에 있을 때도 그랬다. 교육 중에 화장실이 급하다고 나가는 병사들이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았다. 조금만 참으면 되지 않나? 싶었다.
지금은 다르다. 방광이라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의 문제라는 걸 몸으로 알게 됐다. 조금이라도 신호가 오면, 그땐 이미 늦은 거다. 그제야 이해했다. 그들또한 화장실을 가고 싶어 가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되기 전의 나는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시끄럽고, 질서를 깨고,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그 민폐 속에서 아이는 자라고, 누군가는 그 소음을 참고 있었고, 세상은 그렇게 알게모르게 아이들을 함께 양육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예전의 나는 “나는 하는데, 왜 너는 못해?”라는 기준으로 세상을 보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버텨야 하고, 해내야 하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배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몸이 먼저 멈추라고 말한다. 더는 이 캐퍼시티로는 안 된다고.
마치 5천만 명을 수용하던 도시가 3천만 명 규모로 다시 설계되어야 하는 것처럼, 인생도 어느 지점에서는 재조정이 필요해진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언젠가부터, 조금씩 내려놓고 싶었다. 덜 완벽해도 되는 이유가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그 나이엔 다 그래”라고 넘길 수 있는 것들이 하나둘 생긴다. 그게 조금은 웃기고, 조금은 슬프지만 완전히 나쁘지는 않다.
사실 이글은 쇠퇴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늘어나는 과정에 가깝다.
예전에는 몰랐던 이유들을 이제야 알게 되고, 이해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몸이 먼저 멈춰 서 준 덕분에 마음은 뒤늦게 속도를 맞춘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지나온 시간들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됐을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