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해도 되는 것”보다 “하면 안 될 것”들이 많아진다. 이름은 달콤하지만, <코코아>는 안타깝게도 ‘하면 안 될 것’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해야 하니까, 사람들은 레토닉처럼 의례 ‘건강’을 찾는다. 그래서일까. 회사에 오면 나도 지리탕처럼 맑은 ‘아메리카노’만 줄창 마셔댄다. 이것도 정말 건강한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뇌리 속 부등호는 대개 커피가 코코아보다 더 낫다고 생각 하니까. 아메리카노 > 코코아 같은 달달한 음료.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코코아 한 잔과 술·담배 사이의 건강 부등호를 떠올릴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코코아가 더 낫지 않을까? 결국 어떤 비교든 ‘상대적’인 거니까.
평소 술·담배도 안 하는 내가, 지하 커피숍 주문기 앞에서 수 분을 망설였다. 코코아에 들어간 설탕 덩어리와 코코아 무스가, ‘내 몸에 들어오게 해도 될까?’ 하는 요상한 죄책감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결국, 몇 분의 망설임 끝에 나는 코코아를 집어 들었다.
집어 든 뒤 마신 한 입의 코코아. 그곳에는 오늘 받은 스트레스들이 거무튀튀한 코코아 무스와 달콤한 설탕 사이에 파묻혀 있는 듯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아주 맛이 좋았다.
누군가에겐 술과 담배도, 내가 코코아를 대하는 마음과 비슷하겠지.
범죄가 아닌 이상, 하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을 끝내 참아내며 받는 스트레스가 더 해로울까. 아니면 다소 해로운 걸 알면서도, 그냥 마음 편히 한 번쯤은 허락하는 게 나을까.
사실 그건 모르겠고 오늘 먹은 코코아는 진짜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