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써버렸는데, 못 버리겠는 이유
<물 건너온, 다 써버린 세안제>
작년 5월, 일본에서 사온 세안제가 어제부로 응급실에 들어갔다.
아무리 짜내고 깨워도 이 녀석은 좀처럼 고개를 들질 못한다.
우리 가족은 꼭 여행을 가면, 세안제나 치약을 막판에 빼놓고 가서 현지에서 사오는 요상한 버릇이 있다.
그 계기로 작년에 만난, 내 방 화장실에 자리 잡은 나만의 세안제. 비록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고, 그저 일본어로 적힌 제품일 뿐인데도.
이제는 앞서 말한 대로 쥐어짜지 않는 이상, 쉬이 고개를 내비치지도 않는 중증 환자가 되어버린 이 친구. 그런데도 왠지 이 녀석은 선뜻 버리기가 싫어진다. 왜일까.
이 녀석을 버리면, 우리가족이 그 당시 도쿄에서 함께했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릴 만한 물건이 마땅치 않아서.
지금은 돌아가신 장모님께서 왜 여행을 다녀오시면 그렇게 냉장고에 붙일 수 있는 ‘자석’ 기념품을 사오셨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현실의 퍽퍽함 속에서, 잠깐이나마 ‘자석’ 기념품을 볼 때마다 그때의 추억으로 미소 짓게 될 테니까.
내게는 지금의 이 중증 환자, 다 써가는 세안제가 그런 의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