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 나는 오늘도 책을 캔다
내가 가장 독서를 많이 했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문학·비문학 문제를 풀기 위해 ‘화자의 생각은 무엇인가’라는 정답을 찾아 헤매며 교과서를 들여다보던 시간, 그리고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 군 생활 당직 근무 중 부대에 비치된 도서들을 탐험하듯 넘기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때의 책이라는 친구는 내게 고된 순간과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도구로서의 가치가 더 컸다.
그렇게 유년을 지나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는,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해준 ‘도구로서의 책’이 꽤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어릴 적의 독서 습관 덕분에 ‘글을 쓰기 위한 저수지’에는 나름의 저수량이 차올랐고, 글을 빠르게 읽고 핵심만 요약해 리포팅하는 일이 내 나름의 ‘킥’이 됐다.
상사와 동료는 늘 시간이 없다. 리포팅하는 사람이 청자를 배려하지 않고 내용을 요약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내용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고 만다.
나는 그 사실을 꽤 빨리 배웠고, 그래서 더 빨리 읽고 더 짧게 쓰는 사람이 되어갔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자전적 에세이와 여행 에세이를 발간하며 한 가지는 분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내 머릿속 ‘글을 쓰기 위한 저수지’에는 아직 ‘사금’이 충분히 모이지 않았다는 것.
“문장이 평이해서 읽히기 좋다”는 반응을 들을 때마다 기분은 좋았다. 다만 동시에, 그 말이 꼭 ‘문장 속에서 뭔가를 건져 올릴 만하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읽기 좋은 글과, 읽고 난 뒤에도 독자가 문장 속에서 사금을 채취하듯 오래 붙들게 되는 글은 다른 종류라는 걸, 나는 그 칭찬을 통해 되레 선명하게 배웠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내 글을 읽어주는 단 한 분의 독자를 위해, 나는 오늘도 책에서 ‘사금’을 캔다.
처음 읽을 땐 그냥 지나쳤던 문장이, 다시 읽으며 사유할 때 비로소 반짝인다. 좋은 문장은 그 문장을 떠난 뒤에도 남는다.
다 마신 커피의 향이 꽤 오래 입가에 머물듯, 좋은 문장도 내 머릿속에 꽤 오래 머물러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 그리고 표현 자체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이제는 책에 대해 진심이 됐다. 아니, 이 진심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책을 통해 사유하고, 사금을 캐고, 그 작은 반짝임들을 다시 내 마음속과 생각속 저수지에 부어 넣는 일. 지금의 책은 더 이상 ‘견디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나를 더 진하게 만들기 위한 노동이자,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문장을 준비하는 가장 올바른 방식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 올바름을 앞으로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