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가 먼저 인사하던 시절
<대기업 명함>
명함에도 무게 차이가 있다고, 나는 취업 준비를 할 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네 부모님도, 주변에서도 “이왕 명함을 받을 거면 대기업 명함을 받는 게 좋다”고 말해주곤 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회사가 나보다 더 커서 나를 보호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할 테니까.
막상 대기업 명함을 손에 쥔 직후엔, 이러저러한 부연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좋았다. 명함 하나로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가 굳이 노력해 이해하지 않아도, “아, 이 사람은 대충 이런 일을 하겠구나”라는 판단이 작은 종이 한 장으로 묵직하게 대신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대기업 명함을 받은 지 15년이나 지난 지금, 나는 자주 ‘명함 = 나’라는 등호가 여전히 성립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명함 속에 적혀 있는 직함, 회사의 주소, 그리고 가장 커다랗게 자랑스레 박혀 있는 회사의 로고까지. 그게 과연 나일까? 하는 생각 말이다.
결국 언젠가 나는 지금 갖고 있는 대기업 명함을 반납해야만 할 것이다. 그때 내게 남는 명함은 무엇일까.
아마 지금의 묵직한 대기업 명함에 비하면 한없이 가벼운, 새로운 명함이겠지. 그땐 내가 더 열심히 부연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순간이 오히려 조금 솔직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명함에 크게 박힌 로고가 먼저 인사하는 명함이 아니라, 내가 먼저 인사하는 명함. 회사가 나를 설명해주는 카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설명하는 카드. 적어도 그때의 명함은 ‘나의 진짜 명함’일 가능성이 크니까 말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건, 명함의 무게가 무겁든 가볍든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더 중요한 건, 명함에 적힌 ‘내 이름’의 무게만으로 오롯이 명함을 버텨낼 근육을 키우는 일이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