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전 나는 슈퍼워킹맘이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출산 전에도 학업과 일을 병행하고 있었고, 운동도 잘해왔고 뭐 하나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고 가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강의까지 하고 있었으니, 강의를 조금 적게 하고 코스웍만 잘 마쳐놓으면 육아와 일, 논문 정도는 병행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정 어려우면 시터를 조금씩 쓰거나 어린이집을 빨리 보내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굉장히 높았다.
지금의 나는? 저 때의 나에게 정신 차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하든지 아니면 그냥 그 순간을 즐기든지 하라고 말하고 싶다. 육아를 제외한 건 아주 조금씩, 매우 조금씩 하고 있다.
강의는 그만둔 지 오래되었고, 복직하라는 회사의 제의는 정말 자신이 없다고 어린이집은 보내고 복직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논문은 진도가 거북이 기어가는 속도보다 더 안 나고 있다. 육아가 이미 나의 정신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 다른 것은 아주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오히려 아이 잘 때 편안하게 쓸 수 있는 브런치 글쓰기를 가장 꾸준히 오래 하고 있는 편이다.
임지숙 외(2019)의 연구를 보면서 내가 오히려 출산에 대해 많은 생각을 안 했구나와 나도 저런 생각을 했었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 연구는 출산 전 기혼직장여성의 가능한 자기(possible self)에 대해 연구한 논문으로, 출산 전 기혼직장여성이 자신이 꿈꾸는 자신의 모습, 가능할 것 같은 자기의 모습, 두려워하는 자기의 모습에 대해 연구하였다.
출산 전 기혼직장여성이 가장 희망하는 자기는 '양립을 위한 개인 내적 전략'을 할 수 있는 자기였다. 일과 가정 양립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으니 일과 가정에서 우선순위를 세워 한계를 인정하고 선을 지켜가며 스트레스받지 않는 모습, 그리고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감정조절을 잘할 수 있는 모습, 양립을 위해서 근무조건을 조정할 수 있는 모습(홈 오피스를 꾸리거나,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부서로서의 이동) 등을 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와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이 모습이 모두가 바라는 워킹맘의 모습이 아닐까. 정말 드라마에 있는 일에서도 베스트의 퍼포먼스를 내면서도 육아에서도 베스트의 케어를 직접 하는 모습은 슈퍼슈퍼워킹맘이 아니고서는 불가할 것 같고 모두가 일과 가정을 양립할 때에는 힘든 점이 있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다 그래도 해나가면서 나의 시간도 조금씩 갖는 것. 지금의 나도 복직했을 때 바라는 모습이고 모두가 출산전후 바라는 워킹맘의 모습일 것이다.
출산 전 기혼직장여성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기로는 육아의 일차적 책임자로서의 두려움과 일과 가정 사이에서 소진되고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이었다. 아직까지는 아내가 주양육자인 경우가 많기에 (특히 이 연구가 시행되었을 시점에는 더 그랬을 것이고) 육아에 대한 책임감과, 부모가 직장에 있는 동안 자녀를 어디에 맡겨야 하는지에 대한 부담, 그리고 일을 하는 엄마로 인해 아이의 성장과 정서에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육아의 일차적 책임자로서의 두려움일 것이다.
나는 출산 전에 육아의 책임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출산 후에는 육아의 책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인지를 잘 안다. 또한 실제로 나와 같이 일하던 분 중 돈도 많이 벌고 우리도 같이 일하기를 계속 원했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자 아무래도 엄마가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고 일을 쉬고 아이를 케어하러 들어가신 분도 계셨을 정도로 일하는 엄마가 아이의 성장과 정서를 잘 케어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건 지금도 그럴 것이고 1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나도 풀타임 복직을 할 경우 시터님을 쓰기로 남편과 합의를 봤지만 그 시터분이 정말 나처럼 이 아이의 성장과 정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할까? 그리고 그렇게 좋은 시터님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으로 아직 복직을 하지 못하고 있기에 육아의 일차적 책임자로서의 두려움에 많은 공감을 하고, 실제로 출산 후에 겪을 일이라는 걸 안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소진되고 자기를 잃어버리는 모습으로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늘 시간에 쫓겨 여유가 없는 모습, 자기 관리를 못해 퍼지고 망가진 모습, 몰상식하고 뻔뻔해지는 모습을 두려워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직장에서 워킹맘을 보면서 일하면서도 쫓기는 것 같은 것에 두려워하였고, 멋쟁이이고 잘 꾸몄던 친구들이 육아를 하니 망가지고 자기 거를 사지 않는 그 모습처럼 될까 봐도 두려워하였고, 생활에 치여서 강제로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일을 핑계로 엄마 역할을 미루거나 가정을 핑계로 일을 남에게 미루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자녀에게 원망하는 모습을 두려워하였다.
출산한 입장에서 연구참여자들이 어떠한 말을 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자 뭔가 가슴이 아프기도 하였고 찡하기도 했다. '자기 관리를 못해 퍼지고 망가진 모습' 이건 지금의 나도 해당한다. 체중은 여전히 빠지지 않고 있고 아이와 남편의 옷을 사는 것은 돈이 아깝지 않은데 살이 빠지지 않은 내 옷은 사기가 아까워 나중에 사야지 하다가 정작 셋이 나갈 때 입을 옷이 없는 모습. 일을 하면서는 당연히 어느 날은 아이가 아픈데 일을 해야 해서 이도저도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을 거고 시간에 헉헉되는 모습을 보며 직장에 누군가는 나를 보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구절에 잠시 멈추어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렇다고 명확한 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 연구의 결론 내용이 흥미로웠는데 일과 가정을 함께 꾸려나감으로써 삶을 좋게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일-가정 향상'과 관련된 내용은 인터뷰에서 찾기가 어려웠던 반면 '일-가정 갈등'과 관련된 주제들이 부각되었다고 이야기하며 한국 사회의 여성에게 아직 일이 주는 명확한 성취나 경제적 이득과 견주어볼 때 가정을 꾸려나가며 얻어가는 무형의 정서적 가치가 삶의 의미나 즐거움 등의 가치로 향유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것 또한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는데 맞다. 육아를 하면서 내가 정말 느끼지 못한 삶의 의미, 즐거움을 느끼고 있고 엄마라는 아무나 얻을 수 없고, 매일매일 새로운 사랑을 느끼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나조차도 자꾸 이 정서적 가치를 명확한 성취와 비교하며 나는 왜 육아휴직 중에 성장하지 못하는가 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정서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것. 그것이 육아휴직 중 내가 바라는 나의 성취 목표다.
오늘의 참고 논문: 임지숙, 박은선, 유성경. (2019). 출산 전 기혼직장여성의 가능한 자기(possible self)에 대한 탐색적 연구. 아시아여성연구, 58(2), 77–131. https://doi.org/10.14431/jaw.2019.08.58.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