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는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마지막 순간, 마차에서 내려 파리의 잿빛 거리를 걸어갈 때, 이름 모를 집의 테라스를 눈으로 계속 좇았다고 한다. 헝클어진 머리, 급격히 살이 빠진 탓에 병색이 완연한 초췌한 행색. 로코코의 살아있는 상징처럼 여겨지던, 베르사유의 꽃이자 사치한 오스트리아 계집인 그녀의 명성과 기요틴 앞으로 끌려오는 그녀의 모습이 이루는 불협화음이 불길이 여겨졌다고 누군가는 기록했다.
형이 집행된 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눈으로 좇던 그 테라스의 비밀을 밝히려 파리의 집들을 들쑤시던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혁명이 다 끝난 후에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그 테라스는 혁명 기간 동안 파리 거주가 불허되었던 가톨릭 사제와 관련되었다고 한다. 그 사제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비밀리에 말을 전해, 임종성사를 기요틴 앞 거리의 어느 집 테라스에서 드려줄 테니 걱정 말고 형장으로 걸어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그 책에서는 감동적인 일화로 소개하였지만, 나는 그 사제의 행동이 다정함보다는 엄격함으로 느껴졌다. 신이 버린 것 같은, 죄인 중의 죄인 취급을 받은, 자신의 아들과 성적행위를 가진 혐의로 고소된 왕비에게 임종성사를 강요하다니. 진정 그녀의 편이었다면 그녀가 지상에서 받은 고통만으로도 충분하다 말해줄 순 없었을까? 성체 조배의 아무 맛도 없는 밀떡 대신에 꿀을 탄 따뜻한 우유 한잔을 건넬 수는 없었을까?
‘콘푸로스트가 다 떨어지면 코코볼을 먹으면 되지’라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마리 앙투아네트를 떠올린다. ‘네가 방금 말한 그 죄까지 하늘에 계신 분께 고백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 ‘네가 소년 시절에 저지를 무수한 잘못들을, 첫사랑에게 뱉을 모진 말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알아채고 고해하지 않으면 너의 다음 생애는 타는듯한 갈증만 가득한 소금사막일 것이다’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아니다. 나는 네가 따뜻한 마음을, 다른 사람들 덕에 네가 살고 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만 한다면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살아내기만 한다면, 그 어떤 실수와 잘못에도 너의 다음 생애는 형광색의 물고기가 헤엄치는 투명한 바다 앞에서, 빨대 꽂은 달큰한 코코넛을 마시는 인생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부채가 탕감되어 어떤 채권자도 너를 쫓지 않는 그런 곳에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말이 나의 행동과 모순됨을 알고, 그 말이 너도, 나도 구원할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네가 나보다 이 모순된 진실을 조금 더 빨리 깨달을 수 있기를, 그래서 너 자신이 세운 창살을 부수고, 달콤한 공기를 마시며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은 생각이 몸에 배지 않아 딱딱한 나의 행동이 네게 풍기는 악취를 그 말이 조금이나마 완화해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멋쩍게 기다리고 있는 네 사발 속 우유에 코코볼을 가만히 부어준다. 밥숟가락으로 코코볼을 우적우적 퍼먹는 너를 바라보며 옆에 따라놓은 나의 커피를 마신다. 형광색 맨투맨을 입은, 빛나는 너를 바라보며 커피의 향을 음미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바닷속 산호더미 어느 한 구석에 치명적인 독을 가진 푸른 고리 문어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 문어가 갑자기 나를 물어 내가 이유도 모른 채 죽는다 하여도 내가 한때 이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았음을,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만큼의 즐거움을 모두 누렸음을 잊지 않고 싶다. 그래서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초조한 잿빛 속에서 구원을 찾기보다 푸른빛 속에서 감사함을 외치며 나의 삶을 제때에 마감해 준 푸른 문어에게마저 고맙다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