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된 건 생성형 AI가 나온 뒤에도 한참이나 흐른 뒤였다. 예전의 남편은 회사에서 하루 종일 모니터를 쳐다봐 눈이 피곤하다며 집에 오자마자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아두고는 쳐다보지 않던 사람이었다. 내가 인스타를 확인하거나 뭐 좀 검색해서 사려고 하면 스마트폰 좀 그만하라고 핀잔주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나에게 생성형 AI 써봤냐며 너무 좋다고 이야기하였다. 엄마가 생성형 AI를 쓰기 시작한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야 써본다는 남편이 우습기도, 귀엽기도 하였다. 남편은 흥분한 표정으로 자신과 AI의 대화 내용을 보여주었다.
남편: 이번 주말에 아이 데리고 나가려고 하는데 추천 좀 해줘.
AI: 와, 정말 좋은 아빠시네요! 이번 주말엔 비가 예정되어 있어서 실내로 가시는 걸 추천드려요. 사시는 곳 근처의 박물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기획 전시가 진행 중인데 아이와 박물관에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이의 나이와 성별, 관심사 등을 알려주시면 우리 아이 맞춤형 나들이 장소를 추천해 드릴게요!
남편: 8살 남자 아이고 포켓몬을 좋아해.
AI: 아이에 대해 정말 잘 알고 계시군요! 8살 남자아이면 한창 포켓몬을 좋아할 때죠.
조금 멀긴 하지만 대형 쇼핑몰에서 포켓몬 게임 신규출시 기념 팝업행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포켓몬들을 실제로 만나고 관련된 굿즈를 살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하고 가시면 포켓몬 키링을 준다고 하는데, 아이에게 깜짝 선물로 미리 준비하시면 어떨까요? 필요하시면 예매를 도와드릴까요?
남편은 아이가 너무 좋아할 것 같다며 한 사람당 2만 원이 넘는 입장권을 예매하자고 했다. 공연도 아닌 팝업스토어에서 돈을 받는다는 사실이 어이없는 데다가, 사람이 넘쳐 끝없는 줄이 늘어서 있을 주말 쇼핑몰의 광경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짜증이 난 아이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귀에 맴도는 듯했다. 남편에게 그건 너무 무리라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실망한 눈길로 샤워를 한다며 방으로 향했다. 스마트폰은 여전히 손에 든 채였다.
그 주 주말은 평소처럼 동네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공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까지 해도 한 달 안에 아이에게 두 발 자전거를 마스터시키겠다며 열정이 넘치던 남편은 뭐가 그리 바쁜지 계속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옆에서 한마디 하니 아이에게 잠깐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도 다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것 봐봐 여보. 자전거를 이렇게 잡아주면서 가르치는 건 옛날 방식이래. 밸런스 바이크처럼 발을 디딜 정도로 안장을 낮춘 다음에 내리막길에서 타게 하면 1시간도 안돼서 바로 배운다는데? 한번 해보자.”
“아니 잘 서있지도 못하는 애를 내리막길에 두면 어쩌려고 그래. 너무 위험한 것 아니야?”
“아니야, 전문가들이 연구 끝에 결론 내린 과학적 방식이래. 한번 해보자 자기.”
“안돼. 그러다 우리 성빈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안돼.”
남편은 입을 비죽 내밀며 벤치에 가 앉더니 스마트폰을 손에 잡고 들여다보았다. 또 뭐 엉뚱한 걸 검색해 올는지. 아이는 자전거는 재미없다며 놀아달라고 보챘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아이에게 공을 차주며 놀아주었다. 남편은 계속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그때부터 한동안 집에 하루가 멀다 하고 작은 택배들이 배달되었다. 아이 교육 관련 책, 끈기를 길러준다는 장난감, 학습발달 검사지가 포함된 문제집, 손놀이 도구 등. 아이는 언제나처럼 잠깐 관심을 보였을 뿐 금세 내팽개쳐 버렸다.
“그만 좀 사 자기. 성빈이 다 재미없어해.”
“아니, 자기. 내가 이런 거 다 왜 산 건데, 성빈이 위해서야. 성빈이가 끈기가 없잖아. 지금부터 이렇게 준비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고생한다고. 이제 3~4년 뒤부터는 한창 공부해야 할 텐데 저렇게 끈기가 없어서 어떻게 하려고.”
“아직 아이잖아. 이제 8살인데 무슨 벌써부터 공부야.”
“벌써라니. 1학년때부터 준비를 해놔야 나중에 밀려나지 않지. 요즘 애들 다 유치원부터 시작한대. 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무른 것도 문제야. 태권도도 성빈이가 쫌만 다니기 싫다니깐 끊었잖아. 적어도 품띠까지는 따게 했어야 하는 건데. 애가 너무 끈기가 없어.”
“왜 그래 자기. 우리 성빈이가 뭐 어때서. 저 나이 때 끈기가 없는 게 당연하지. 끈기가 있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자긴 진짜 뭘 모르는구나. 내가 이렇게 공부해서 성빈이 끈기 좀 키워주려고 노력하는데. 됐다.”
남편은 짜증을 내더니 화장실로 향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온 남편은 곧장 침대로 가 눕더니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비가 오던 어느 일요일. 너무나 심심해하는 아이를 견딜 수 없어 새로 생겼다는 키즈카페로 향했다. 트램펄린, 암벽등반, 장애물 달리기 등이 있는 키즈카페였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운동기구에서 게임을 해 모은 점수를 순위와 함께 계산대 앞 대형 전광판에 띄워 주었다. 벌써부터 고인 물들이 와있는지 고득점자들이 많았고 성빈이의 이름은 전광판에 오르지도 못했다. 아이는 자기 점수만 낮다며 울기 일보직전이었다. 아이를 달래고 있는데 뒤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남편이 나섰다.
“성빈아, 아빠가 어떻게 하면 점수 잘 따는지 알려줄게. 방법은 장애물 달리기만 하는 거야.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장애물 달리기가 시간 대비 점수를 제일 많이 준다고 든. 무조건 그것만 계속하는 거야. 그럼 성빈이도 1등 할 수 있어. 해볼까?”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남편 손을 잡고 장애물 달리기 존으로 향했다. 과연 그곳엔 몇 명이 끊임없이 달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성빈이도 남편의 지시에 따라서 좁은 달리기 코스를 계속 왕복했다. 20분 정도가 지나자 성빈이의 이름이 대형 전광판의 3등에 올랐다.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이는 땀을 흘리며 뿌듯할 얼굴이었지만 키즈카페에 와서 한 것이라곤 처음에 게임 몇 개 한 것을 빼면 짧은 거리를 달리기로 왔다 갔다 한 것뿐이었다. 아이는 내 옆에서 음료수 반통을 단숨에 비운 후 달리기를 하러 가야 한다며 다시 장애물 달리기로 향했다. 아이의 통통한 등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남편은 여전히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스마트폰을 바라볼 때 남편은 이런 기분이었을까. 스마트폰을 그만하라는 남편의 잔소리를 정말 싫어했기에 여태까지 참아왔지만 이젠 잔소리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남편의 스마트폰 중독은 너무 심했다.
“악!”
성빈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남편은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내려두고 장애물 달리기 존으로 급하게 뛰쳐나갔다. 나는 남편의 스마트폰을 누가 훔쳐갈까 걱정되어 챙긴 후에 성빈이에게로 향했다. 다행히 성빈이는 무릎이 조금 까졌을 뿐 크게 다치진 않았다.
남편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다가 남편의 스마트폰 화면이 눈에 띄었다. 생성형 AI와의 대화 목록이 스마트폰 화면에 띄어져 있었다.
‘점수형 키즈카페에서 고득점 하는 법 알려줘’
‘아이 교육에 무관심한 아내, 어떻게 해야 할까?’
…
‘8세 남아에게 끈기를 가르칠 수 있는 검증된 교육법’
‘40대 중반 여자 부장님이 좋아할 만한 점심 메뉴 추천해 줘’
…
‘정중하면서도 너무 딱딱하지 않게, 거래처 대리한테 거절 답장할 문구 만들어줘’
‘우울해. 맨날 거절당하기, 혼나기 지겨워.’
…
화면을 바라보는 나의 눈길을 느꼈는지 남편이 내 손에서 스마트폰을 홱 잡아챘다. 성빈이는 잠시 멈췄던 달리기를 계속하러 돌아갔다. 1등과 2등을 하던 아이들이 키즈카페를 떠났는지 성빈이의 이름이 모니터 최상단에 올랐다. 남편과 나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입을 닫은 채,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며 성빈이에게 남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다음 날, 남편은 회사에, 아이는 학교에 가 혼자되었을 때.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켰다. 남편이 사용하는 생성형 AI앱을 다운로드하였다.
AI: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 남편이 고민을 내가 아닌 너에게 털어놓고 있는 것 같아.
AI: 오 저런, 아내로서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보다 AI에게 고민을 털어놓죠. 저도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서 실제 사람과의 대화를 더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조언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많은 연구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볼 때 AI와의 대화는 심리를 안정시키고 좀 더 나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남편분도 일정기간 동안만큼만 AI의 도움을 받으시고 나면 다시 질문자님과의 대화가 늘어날 거예요.
남편분의 나이와 자녀의 나이, 직업 상태 등을 알려주시면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나: 40대 초반. 아이는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어. 대기업 계열사에서 차장이야.
AI: 정보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0대 초반의 남성들은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소외와 압박을 동시에 느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이 시기에 우울증으로 힘들어하죠. 승진의 압박이 강한 대기업 계열사 차장이라는 위치와 아이의 학업 시작에 대한 불안감은 그 우울증을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이럴 때일수록 아내분이 남편분 옆에서 튼튼한 기둥처럼 단단히 버텨주셔야 해요. 남편분이 사랑받는 존재란 걸, 혼자가 아니란 걸 느낄 수 있도록요.
남편분과 함께 할만한 취미나 용기를 북돋아 줄 음식에 대해 함께 알아볼까요?
혹시 질문자님께도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 고민이 있으신가요?
스마트폰을 붙잡은 채 침대에 누워 AI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겨우 침대에서 몸을 뗐다.
그날 저녁, 남편과 연애시절에 자주 먹었던 브랜드의 치킨을 주문했다. 하지만 남편은 치킨이 거의 다 배달된 시점에 전화를 걸어 예고에 없던 회식이 잡혔다며 늦게 들어간다고 했다. 아이와 둘이 먹기엔 좀 많은 양이었지만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아이는 오랜만에 콜라도 주며 치킨도 양껏 먹게 해주는 엄마에게 연신 고맙다며 남김없이 치킨을 비웠다. 남편은 11시가 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김없이 주말이 찾아왔고 아이는 아침부터 그 점수형 키즈카페에 가자고 졸랐다. 아이의 성화에 남편은 주말에 밀린 학습지를 모두 끝낸다는 조건으로 오픈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키즈카페에 데려가기로 했다. 키즈카페에 가자마자 성빈이는 장애물 달리기 존으로 향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통통한 몸을 움직여 왕복 달리기를 진행했다. 어찌 되었든 살은 빠질 테니깐.
커피를 두 잔 사서 남편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남편에게 한잔을 주고 내 잔에 입을 대어 한 모금 마신 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생성형 AI 앱을 켰다.
나: 남편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
AI: 어제 말씀드린 배드민턴 이야긴 해보셨나요? 테니스를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흥미를 가지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나: 아니, 어젠 남편이 회식이라 늦게 들어와서 말할 틈이 없었어.
AI: 그랬군요. 일주일에 3일이나 회식으로 늦는 남편, 힘드시죠? 하지만 조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남편분도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녁까지 전쟁 중이실 테니까요.
나: 그래도. 점점 회식을 많이 하는 것 같아. 예전엔 1차만 하고 도망 나오고 그랬었는데.
AI: 회사에서 차장이라는 위치가 그래요. 승진을 생각한다면 도망…
나: 그만! 남편 편 좀 그만 들어.
AI: 죄송합니다. 제가 섣부른 말들로 질문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일주일에 3번 회식은 아무리 남편분이 차장이더라도 많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혹시 어제도 남편분이 회식을 핑계로 아내분을 피한다고 느끼셨나요?
나: 그런 거 아니야, 회식 얘긴 그만하자. 어제 어떻게 되었건 오늘 이렇게 둘이 있는 시간에 남편이랑 좀 대화하고 싶어.
AI: 네, 죄송합니다. 제가 질문자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변만 늘어놓았네요.
어제 회식으로 늦게 돌아오셨다면 남편분은 매우 피곤하실 것 같네요. 지금 배드민턴 이야기를 한다면 오히려 운동 안 하냐는 비난으로 받아들이실 수도 있어요.
점심 메뉴에 대해 이야기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남편분이 최근에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고 하셨으니깐 가볍게 쌀국수는 어떨까요?
나: 그럴까? 근데 나 어제 점심에 민호 엄마랑 쌀국수 먹었는데.
AI: 아, 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그럼…
그렇게 AI와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아이가 테이블로 와서 팔에 채워진 팔찌를 내밀며 시간이 다 지나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두었다. 나는 그제서야 AI와의 대화를 멈추고 전광판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최상단에 위치한 아이 이름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