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7년째 맏며느리다.
10년 넘게 맏며느리를 열심히 하던 중
어느 날부턴가 맏며느리 노릇을 하기 싫어졌다.
사실 요즘은 맏며느리 반항기라고나 할까?
이번 추석연휴는 추석 전 휴일이 많다.
어쩌면 시댁에서는 내심 빨리 오기를 바랄 것이다.
모처럼 친정으로 먼저 갈까 했지만
오전에 수업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
일정을 급 수정하기로 했다.
맏며느리 모드로 가기 전 잠시 콧바람을 쐬야겠다고
결정했다.
이번 여름은 특별한 휴가도 없이 나름 바쁘게 보냈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이어서 남편의 휴가이지만
서로 시간을 맞출 수도 없고
오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자전거를 타고 온 남편에게
급 1박 2일 여행을 제안했다.
다행히 남편은 네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며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대충 내일 갈아입을 옷이랑 간단한 짐을 챙겨서
2시가 넘어 출발했다.
그렇게 우리의 즉흥 여행이 시작되었다.
단 내일 돌아와야 하는 여행이행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서해 바다 부안
부산바다만 보고 살던 나는 늘 서해바다를
동경해 왔다.
네비를 찍으니 4시간이 조금 넘는다.
사실 혼자라도 가볼까 했지만
혼자 4시간 운전은 무리일 것 같아
포기했었다.
남편의 표정은 약간 굳어지는 듯했지만
운전대를 잡아 주었다.
사실 가면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시댁에서 나는 그냥 딱 맏며느리다.
맏며느리는 맏며느리니깐 그냥 일을 해야 한다.
예전에 비해 요즘은 많은 음식들은 하지 않지만
워낙에 사람들이 오는 걸 좋아하시는
아버님 때문에 밥 차리고 설거지하는 게
좀 피곤할 뿐이다.
사실 일하는 것도 별로 힘들지 않다.
결혼 17년이 되어도 시부모님이 편하지 않고
시골집이라 불편할 뿐이다
딸처럼 대해주기는 바라지 않는다.
이미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어머니가 맏며느리 노릇을 했기에
나도 당연히 해야 한다는 논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맏며느리니깐 그냥 해야 한다는 게 싫은 것뿐이다.
동서가 있고 사촌 동서가 있어도 거의 대부분의 일은
내 몫이기에 명절이 싫은 것뿐이다.
여전히 유교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버님이
싫을 뿐이다.
그런 기분들이 미리 날려버리고자
아이들에게 통보 아닌 통보를 날리고
부랴부랴 집을 나선 것이다.
낯선 곳으로 오니 기분이 좋다.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음식들
늦게 출발했고 도착하니 이미 깜깜한 밤이었지만
내일 아침이 기다려지고 설렌다,
보이지 않는 풍경들은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부안에 오니 너무 조용해서 숙소가 많겠지? 하고
했는데 숙소는 이미 꽉 차고
겨우 힘들게 잡은 숙소에 들어와 이렇게 글을 쓴다.
내일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채석강으로 갈 것이다.
우리의 일정은 너무나 짧다.
아마도 내일 점심만 먹고 울산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남들은 명절 제사는 지내지도 않고 각자 알아서
지내라고 한다는데
명절 연휴 해외여행도 가고 가족 여행을 간다는데
그렇게 차례와 제사를 챙기던 친정아빠도
올해 명절을 마지막으로 명절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시부모님들은 언제 마음을 바꾸실는지...
부안으로 오는 길에 시댁에서 전화가 왔다.
언제 올 거냐고? 떠보는 전화다.
효자이자 장남인 남편은 추석 전날 일찍 가겠다고 했다.
시골에 할 일이 많다며 일찍 오라는 시부모님
사실 남편도 시골일이 정말 하기 싫은 눈치지만
장남이기에 거절을 하지 못한다.
한동안 나는 시댁에 전화도 하지 않았다.
설 이후로 단 한 번도 시댁에 가지 않았다.
토요일 일하는데 시댁 가면 쉬지 못하니
남편만 보냈었다.
너무 오랫동안 방문을 안 해서 사실 이번 추석이
떨리고 무섭다. 그래서 마음도 무겁다.
아버님한테 혼나지는 않을지...
아버님이 한 성격 하시기에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이왕 여행 왔으니 무거운 기분은 날려 버리고
잠시라도 시댁은 잊고 내일을 즐길 것이다.
무리하게 이렇게 와준 남편이 참 고맙다.
내 마음을 알기에 순순히 와 준 거겠지?
걱정되는 맘 다 잊고
그냥 부안의 좋은 추억만 담아 가야지.
내일 만날 채석강의 풍경이 너무 기대된다.
짧고 굵게 즐기고
맏며느리 모드로 가자!! 파이팅
하기 싫은 것도 최선을 다하는 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