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버텨줘서 고마워

by Bagette J


오늘 하루도 버텨줘서 고마워

2019년 10월 19일은

윤서가 태어난 지 2000일 되는 날이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하루일지도

누군가에겐 슬펐던 하루일지도

또 누군가에겐 뜻깊은 하루가 아닐까 싶다


몇 년 전 처음 입원생활을 시작하고 몇 번의 수술 끝에

장기입원 환자가 되어 20일째 병원과 동고동락하던 어느 날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던 부부는 야외 병원 구석 공원에서

간신히 잠든 윤서를 아기 띠에 안고 서서 시원한 생맥주와 치킨

한 조각을 먹어도 세상을 다 가진 행복감을 느끼며

오랜만에 둘이서 윤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멋모르고 정신없이 지나왔는데

벌써 저 이야기했던 일들이 가물가물 해 질 정도로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동안 윤서가 살아오며 느꼈던 감정은

자신을 위해 했던 부모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엄청 힘들고 짜증 나고 답답했을 것이다

살아온 2000일 동안 3분의 2 정도를 일반적이지

못한 힘든 삶을 겪게 해줘서 굉장히 미안하다


윤서는 예전처럼 매일매일 재활치료를 받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받지 못하는 게 맞는 말이겠지)

그리고 유치원을 마치고 차에 타면 곧장 할머니를 찾는다

엄마가 고개를 저으면 불안과 짜증에 울음을 터트리다

잠들어 버리고 자다 깬 눈으로 거리를 보며 센터 근처에

왔음을 직감하면 또다시 울음을 터트린다..


이제 알고 있다 치료를 한다는 거 또 그게 싫다는 거

그리고 치료가 하나씩 끝날 때마다 엄마 얼굴을 보며

"다했다!!!"라고 외치며 엄마의 얼굴을 살핀다

냉정하게 다음 치료를 위해 이동하면 또다시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치료실 앞에서 울음을 그치고 순응하기도 한다

짜증 내고 화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윤서는 6년 동안 이따금 아주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요즘에는 언어나 표현 이해 능력이 아주 조금씩

발달되고 있어서 너무너무 뿌듯하지만 한편으론 슬프다..

몇 년 전 나는 또 병원에서 또래 아이들처럼 말도 잘 못하고

발달도 못할꺼예요 라는 사형선고 같은 이야기를 듣고

우울감과 좌절감에 빠져있을 때 병실 앞에서 딸이 아빠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을 보며 작은 소원이 생겼었다


우리 윤서가

"아빠 힘내세요" 노래 한 소절만 불러줄 수 있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행복할 것만 같았다 그건 욕심이고

조금씩 성장하며 느끼고 깨우치고 알아가는 윤서가

고맙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우리 딸에게

그만큼 미안하고 속상한 부모의 마음은 더욱더 커지는 것 같다


어찌 됐던 쉽지 않은 삶을 사는 우리 가족

행복해 보인다고 밝게 사는 게 좋아 보인다고

응원하고 격려하고 기도해 주시기도 하지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가장 먼저 나에게

들려주는 주문 같은 울림 '오늘 하루도 버텨줘서 고마워'


두근두근 심장은 늘 시한폭탄같이

정신없는 내 몸은 늘 외줄을 탄 것 같이

늘 여러 가지의 자아가 분열되는 하루 속에서

고생해 준 나에게 내일도 힘내자며 토닥이는 말이다

벌써 2000일 같지만 하루하루 돌아보면 정말로

단 하루도 쉬운 날은 없었던 것 같다


윤서.. 나 .. 솔지.. 늘 슬프고 힘들고 짜증 나고 고통스럽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잘해줘서 오늘까지 온 것 같다

우연히 병원 가는 길에 듣던 라디오에서 노래가 들려온다

웃어도 눈물이 나 괜찮아 괜찮을게

소리 내 울면 멈출 수 없음에

눈물이 나면 웃어보는 거야 참아보는 거야

라는 후렴구를 듣고 눈물을 한참 흘린 적이 있다


오늘 하루도 잘 이겨낸 우리 가족의 감정을

이야기한 것처럼 너무 공감이 되어서

2000일 동안 여자이길 포기하고

자신의 기본권과 권리는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며

6년 동안 헌신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윤서 엄마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아픈 가운데 잘 먹고 병과 잘 싸우며

소소한 행복을 선물해 주는 밝은 모습의 윤서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윤서를 응원해 주고 사랑해 주는 모든 분들께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드릴 수 없음에 죄스럽지만

여기로 나마 감사의 영광을 돌리고


모두의 바람처럼 3000일 그리고 이후 시간들

기적을 노래하며 진정으로 우리 가족에게도

웃음 속에 슬픔을 감추고 있는 게 아니라

진정한 행복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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