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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향 Jul 18. 2024

영화 "시인 할매"를  보러 갔다

눈 내리는 아침이었다. "이종은 감독"의 다큐영화 "시인 할매"를 보러 영화관에 갔더니 안에 아무도 없다.
나 혼자서 영화를 보는구나! 했는데 영화가 시작되자 젊은이 둘과 중년 여자 둘이 와서 다섯이 띄엄띄엄 앉아 영화를 관람했다.

전남 곡성의 시골마을, 평생을 까막눈으로 엎드려 일만 하던 평균 연령 80대 할매들의 이야기였다.
김선자 관장이 "길 작은 도서관"을 열 때 책장에 책 꽂는 일을 돕던 할머니들이 책을 거꾸로 꽂는 것을 보고는 마을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게 되었다고 한다.
시 쓰기와 그림 그리기 수업으로 생전 처음 느끼게 된 배움의 즐거움과 삶의 의미를 알아가며 재미나게 살아가는 할머니들과 곡성의 농촌마을 풍경을 펼쳐 보여주는 영화, 할매들의 지난한 노동의 삶과 시와 그림들이 눈물겹도록 시리고 아름다웠다.

우리 어머니는 글을 아는 분이셨는데도 편지글이나 기록을 남기지 않아 못내 아쉽다.
딸들이 낸 시집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짬짬이 모두 읽으시곤 하셨다는데 왜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셨을까.
저 김선자 관장처럼 나는 왜 어머니가 어머니의 삶을 글로 남길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고 함께 하지 못했는지 못내 아쉽고 후회스럽다.
우리 어머니도 어머니 안에 쌓이고 맺힌 것들을 저 곡성의 할머니들처럼 글과 그림으로 남길 수 있었다면 어머니의 쓸쓸하고 허전했을 말년의 시간들이 좀 더 단단해지고 의미 있고 풍요로웠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본 영화였다.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눈-(윤금순)

"나무를 때면서
 속상한 생각
 3년을 때니까 없어지네
 허청이 텅 비어브네 -남편-(김막동)

"모 심그러 가도 쌀 두 되
 똥소매 떠내
 하루 점도록 보리밭에 찌글어도
 쌀 두 되" -가난-(최영자)

"열아홉에 시집왔제
 눈이 많이 온 길을
 얼룩덜룩 꽃가마를 타고
 울다가 눈물 개다
 울다가 눈물 개다
 서봉 문 앞까장 왔제
 고개를 숙이고 부끄라서
 벌벌 떨었어
 각시가 왔다고 벅적꺼린게
 원삼족두리로 얼굴 가리고
 신랑 얼굴도 못 보고 -시집-( 김점순)

"해당화 싹이 졌다가
 봄이 오면 새싹이 다시 펴서
 꽃이 피건만
 한 번 가신 부모님은
 다시 돌아오지 않네
 달이 밝기도 하다
 저기 저 달은 우리 부모님 계신 곳도
 비춰 주겠지
 우리 부모님 계신 곳에 해당화도
 피어 있겠지 -해당화-(양양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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