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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향 Jul 18. 2024

길고도 짧은 하루

귀향

어머니 기일 추모 행사로 고향에 다녀왔다.

새벽에 srt 기차를 타고 이른 아침 8시에 정읍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탈까 망설이다 약속시간이 넉넉해 버스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오래전 통학버스를 타고 오가던 길을 추억을 떠올리며 실려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던 예전의 정취는 대부분 사라졌어도 낡은 시골 버스는 어쩐지 편안하고 정겨웠다. 꼬부랑 할머니가 천 원 한 장을 손에 쥐고 정류장이 아닌 길목에서 손을 흔들어도 버스는 멈춰 서서 느릿느릿 힘겹게 차에 오르는 노인들을 기다려 태우곤 했다.


버스 정류장에 적혀있는 시간표보다 왜 그리 버스가 늦게 오는지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편안한 얼굴의 사오십 대 느긋한 운전기사가 어쩐지 잘 생겨 보이고 마음이 훈훈해졌다.

태인 정류장에서 내려 연꽃이 피기 시작한 함벽루에 들렀다. 연못 주변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았다.

고향의 눈부신 풍경들이 나를 웃게 하고 나를 들뜨게 했다.


어머니 생전에 다니시던 원불교로 갔다.

친정 식구들과 반갑게 만나 추모제를 지냈다.

교무님의 독경소리에 부모님 환한 얼굴을 떠올렸다.


함벽루 근처 식당에서 오리구이로 점심을 고 부모님을 뵈러 산으로 갔다.

큰 오라버니가 주변에 파석을 깔아 말끔하게 새로 단장한 묘소 앞에 나란히 서서 부모님께 인사를 올렸다. 조부모님께도 안부를 전했다.


성묘를 마친 후 초등학교 뒤에 새로 생긴 수려한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시며 온갖 수다를 나누며 놀다 형제자매들과 헤어졌다.


막냇동생이 데려다준 소방서 근처에 있는  모두랑 찻집에서는 내 시집을 샀다는, 소설을 쓴다는 s 씨와 반갑게 만나 한참을 놀았다.


초딩 동기 의사 친구 부부도 만났다. 저녁으로 친구 남편이 사준 삼계탕을 먹고 부부가 챙겨주는 개복숭아액과 매실액을 무겁게 두 손에 들고 상경했다.


좋은 사람들과 기분 좋게 만나고 기분 좋게 헤어진 오늘 하루는 길고도 짧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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