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의 임무
#the record of vanity
사회초년생에겐 웃지 못할 임무가 생긴다.
나만 모르는 '막내가 지켜야 하는 암묵적인 룰'을 눈치껏 챙겨야 하는 것이다.
입사하고 몇 개월 되지 않았던 때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부서 대리님과 함께 외부 거래처분의 차를 타고 시장조사를 나갈 일이 있었다. 대리님과 거래처분은 이미 몇 년 전 같은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인연이 있었고, 이미 몇 번의 회의 통해 꽤 친분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장조사를 떠나는 날, 두 분히 편~히 말씀 나누시라고 자연스럽게 나는 뒷좌석에 착석했다. 다행히 시장조사도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까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대리님은 나에게 속삭였다.
"** 씨, 혹시 다른 데가서 실수할까 봐 말해주는데, 뒷좌석 오른쪽은 상석이야. 그다음은 뒷좌석 왼쪽 자리이고, 마지막이 보조석 자리야."
그때 그 싸늘함과 얼얼함이 아직도 느껴진다. 소위 '직장생활 매너'라고 하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엔 가족이나 친구들이랑만 차를 타봤으니 '상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OJT에서 알려주지도 않았고, 어디 공식적으로 알려진 규정도 없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에게도 물어봤다. 친구는 막내가 지켜야 할 직장생활 매너를 술술 읊어주었다.
"엘리베이터 탈 때는 밖에서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가, 윗분들이 다 타시면 마지막에 들어가 버튼 쪽에 서야 해. 그래야 층도 누르고, 내릴 때도 '열림' 버튼을 누를 수 있거든. 회의할 때는 번잡한 문쪽이 막내 자리야. 회의를 하는 동안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자리가 제일 산만하기도 하고, 누가 뭘 시키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회의실이나 식당에서는 입구를 바라볼 수 있는 안쪽 자리가 상석이야. 그래야 윗사람들이 누가 들어오는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거든."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람 간의 또는 부서 간의 매너는 눈치껏 잘 해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다. 막내가 모르는 '막내가 지켜야 하는 암묵적인 룰'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막내의 룰이 있다는 것에 당황스러웠고, 다음은 회사에 일을 하러 왔지 왜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었다. 이게 왜 직장생활 매너이고 지켜져야 하는 룰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칠 수도 없었다. 사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이젠 그냥 몸이 익숙해져 버렸다. 지금은 눈치껏 막내로서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위로 갔을 땐 대물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