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 성향의 상사 A와 상사 M
#the record of vanity
얼마 전 올린 글 [회사원에게 일이라는 것]에서 상사 A에 대해 언급했었다. 상사 A는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보고서를 준비할 때면 최대한 여러 변수를 생각해야 했고 어떤 질문을 할까 항상 고민하게 만들었다.
몇 년 전 상사 A가 잠시 회사를 떠났을 때,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상사 M과 잠시 일할 기회가 있었다. 상사 M은 직급이 아래인 팀원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존대를 했고, 매사에 평정심을 잃지 않는 분이었다.
하루는 업무시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해서 죄송하다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상사 M은 이렇게 말했다.
"OO 씨는 알아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니까 업무시간에 개인적인 일로 몇 시간 자리를 비운다 해도 괜찮으니 눈치 보지 말아요. OO 씨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 돼요. 나는 OO 씨를 믿어요."
놀라운 것은 당시 함께 일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라는 것이다.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사 M은 나를 믿어주었다. 그리고 상사 M이 나를 믿어줄수록 팀을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했다.
사실 처음 상사 M을 만나 적응하는데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전 상사 A는 모든 업무가 본인의 통제 안에서 움직이길 바랐다. 그래서 외부에 가벼운 인사 메일을 보낼 때조차 일일이 컨펌을 받고 보냈어야 했다. 처음에는 불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확인을 받지 못하면 오히려 불안해졌다.
반면, 상사 M은 내게 일임한 업무에 대해서는 보고가 올라갈 때까지 또는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자유와 결정권이 익숙지 않아 불안해했고, 혼자 메일을 보낼 때마다 부담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상사 M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예요. 혹여나 OO 씨가 메일을 잘못 보낸다 하더라도 책임은 내가 질 거고, 이 세상에 대화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으니까 OO 씨가 편히 일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생활을 하며 이런 관계는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사 M의 말은 퍽 충격적이기도 했고, 진심으로 감동했다. 책임은 둘째 치고, 어떤 일이든 해결할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사회초년생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해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상사 M에게 물어봤었다. 상사 M은 자신도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고 더 젊었을 때 팀원들을 쪼아 보기도 하고 혼내봤지만 모두 부질없는 것임을 느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사회초년생들 대부분이 빠르면 20대 초중반, 늦으면 30대 초반으로 이미 다 큰 성인이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시작과 함께 다시 막내가 되는, 때론 성인 대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운이 좋게도 나는 성향이 정반대였던 상사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상사 A와 함께 일하면서 업무적으로 트레이닝이 되었고, 상사 M을 통해서는 이상적인 팀 관계가 실재할 수 있음을, 그리고 신뢰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만약 지금까지 한쪽 성향의 사람 하고만 일을 했다면, 아마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향후 나의 경험이 곧 또 다른 잣대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존경하는 나의 상사들의 좋은 점만 닮기를 노력해 팀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상사가 되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