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이 더 커지는 이유
#the record of vanity
얼마 전 이직을 위해 자소서를 다시 써보았다. 나름 경력도 있었기에 적어도 서류전형은 통과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일주일 만에 받은 결과는 '탈락'이었다.
자소서를 몇 번 써보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이미 현재 회사에 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필사적이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탈락'이라는 두 글자는 하루를 망치는데 충분했다.
잠시 생각해 봤다. 어떤 사람들은 훌훌 잘 털어버리는데, 왜 나는 하루를 망칠 만큼 타격을 받을까. 원래 거절을 두려워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단 한 번의 고배로 자존감까지 고민할만한 일일까? 그러다 문득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진다.'라는 말이 떠올랐고, 그렇다면 언제 '기대'가 커지는지 의문이 들었다.
꼬리는 무는 질문에 나름대로 내린 답은 '상상력'이었다. 어쩌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너무 상상력을 가미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이번 사건만 하더라도, '서류 통과 후 면접 보는 상상', '최종 합격 후 이직할 회사에 다니는 상상' 등 혼자 남몰래 한 상상들이 무의식적으로 기대를 층층이 쌓은 것은 아닐까.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상상들이 때론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기대만 쌓아 현실과 괴리를 만들어 더 좌절하거나 실망하게 하는 것 같다.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인간관계'도 생각해보았다. 특히, 과거 연애도 돌이켜 봤을 때,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도 기대치가 꽤 높았던 것 같다. 머리로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영화나 드라마, 또는 주변에서 만점 짜리 '남자친구/남편'이라는 수식어로 만들어 낸 '상상 속 남자친구'를 만들어 놓고는, 그렇게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상대를 예단해왔던 것 같다.
'기대'라는 게 때때로 설렘을 느끼게 하고, 기대가 현실이 될 때 행복과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현실과는 먼 괴리를 자각했을 때, 실망이 더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는 핑크빛 상상은 상상 속에만 두는 연습을 하자고 마음먹으려고 하는데... 막상 모래사막 같은 현실에서 이런 상상조차 통제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과연 이게 옳은 방법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기대를 통해 설렘을 느끼는 것도, 좌절을 통해 슬픔을 느끼는 것도 한낱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며, 여기에는 '좋고 나쁘고/맞고 틀리고'가 없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싫다고 자유로운 상상과 기대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소화시킬 수 있는 연습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